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모진 바람이 불어올 때 견뎌내는 강한 풀을 알 수 있듯 역경을 이겼으므로 그 사람의 진가도 알 수 있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다. 풀은 가장 약하고 작은 존재다. 보통 일반백성을 말할 때 민초(民草)라고 말하는데 백성들을 풀에 비유한 시가 있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다. 

풀은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질긴 생명력을 나타내는 우리 속담도 있다. ‘빠른 바람에 굳센 풀은 안다.’ 즉, 굳은 의지와 절개는 시련을 겪으므로 인해 더 뚜렷해진다는 말이다. 

중국 후한을 세운 광무제 때에 명장 왕패는 젊은 시절 하급관리로 감옥을 관리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수도 장안(長安)으로 유학을 보냈다. 

당시 한나라를 찬탈해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의 개혁정치는 실패하고 말았으며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각지에서 왕망의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 마침내 반란군이 조직되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양에 호족으로 있던 한(漢) 왕조의 핏줄인 유연과 유수 형제들도 한 왕조의 부흥을 내걸고 군사를 일으키는데, 훗날 광무제가 되는 유수가 영천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때 왕패는 빈객들을 거느리고 와서 유수를 만나 말했다. “장군께서 일으키신 군대는 의로운 군대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역량을 알지 못하지만 모두 장군의 명성과 덕망을 우러르고 있으며 장군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유수가 말했다. “내가 꿈꾸었던 것은 어진 인재들과 함께 공업을 이루는 것이었소. 어찌 다른 뜻이 있겠소?” 이렇게 해서 왕패가 이끄는 무리들이 함께 유수를 돕게 되었다. 곤양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왕패는 고향으로 돌아와 부친에게 유수를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부친이 말하기를 “나는 이제 늙어서 군대 생활을 이겨낼 수 없으니 네가 가서 도와주어라.”고 했다. 

왕패는 다시 유수를 따라 낙양으로 쳐들어갔다. 유수가 대사마가 되자 왕패를 공조영사로 삼아 하북 으로 건너갔다. 이때 왕패를 따랐던 수십 명이 고난에 처해지자 몰래 대열을 떠나기 시작했다. 유수는 개탄해 하면서 왕패에게 말했다. “영천에서부터 나를 따랐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그대만이 남았소. 계속 함께 노력해 봅시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을 알 수 있을 것이요.”

유수가 본대로 왕패는 죽음을 무릅쓰고 주군 유수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더욱 신임도 받았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낸 동지들은 뜻을 함께할 수 있으며 목표한 바를 이룩할 수 있다. 

조선 말기 제주도로 귀양간 추사 김정희도 논어 자한편 나오는 말을 인용해 아무도 찾지 않는데 항상 잊지 않고 찾아준 제자 이상적 에게 세한도를 그려주면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 추사선생님께서 제자 이상적에게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시절이 좋을 때나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나 한 결 같이 인격과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추사의 다짐은 나중에 문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이 세한도는 1974년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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