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왜 ‘한명의 죽음은 비극이고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하는가. 인간의 목숨은 누구나 같은데 이런 끔찍한 말을 할까.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이 한말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말 같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자주 보이는 말이다. 

미국 오리건대학의 심리학자 폴 슬로빅(Paul Slovic)은 두 가지 실험을 했다. 실험 1: 피험자들에게 어린아이 8명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들을 치료하려면 30만 달러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또래의 어린아이 1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아이의 치료비로 3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험2: 피험자들에게 굶주린 아프리카 소녀 사진과 굶주린 아프리카 소년 사진을 각각 보여주었다. 그리고 소년과 소녀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위의 첫 번째 실험 에서는 어린이 8명보다도 1명에게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가 훨씬 많았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소녀와 소년에게 각각 비슷한 동정심을 보였지만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고는 동정심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슬로빅의 이 연구는 “우울한 심리학적 경향을 시사한다.”며 “사람들은 단 하나의 희생자는 불쌍히 여기지만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무덤덤해지며 88명이 죽는다 해서 87명이 죽는 것 보다 더 가슴 아파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수녀는 성인으로 추대되기도 했으며 “남의 삶을 위해 살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니다,”라고 했고 인간의 본성은 “다수를 보면 행동하지 않고 한명만 본다면 행동한다.”고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제학과 교수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공감의 시대》에서 “남을 돌봐주는 사람들, 특히 의사나 간호사들은 흔히 말하는 ‘동정 피로증’에 걸리기 쉽다. 사회복지사도 그렇고 전쟁터나 재해 현장에서 비상시에 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증세에 노출되어있다. 끊임없는 공감과잉은 정서적 고갈을 가져와서 공감적 반응은 무뎌지며 정서는 메말라간다.”이런 현상을 동정 피로증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노스코트 파킨슨이 주장한 ‘파킨슨의 법칙’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파킨슨은 “1000만 달러를 고민하는 데 쓰는 시간과 10달러에 쓰는 시간이 똑 같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관심을 상기 시킨다. 그렇게 많은 차이인데도 왜 그럴까? 파킨슨은 의문을 가지면서 “규모가 큰 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대개 두 부류다.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그것이다. 백만장자에게는 실제 100만 달러를 다뤄봤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 반면 가난한 응용수학자나 강사들은 1000달러도 만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100만
달러나 1000달러나 그냥 큰돈으로 이해가 된다.”고 말한다. 

이어서 “세상은 이 두부류의 중간 즉, 100만 달러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1000달러에 대해서는 안다는 사람들이 많다. 재정위원회 사람들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관찰은 하되 심도 있게 연구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을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 법칙이 주는 교훈은 한 안건을 논의하는 시간은 그 안건에 포함된 예산액에 반비례한다.”고 역설적인 말을 한다. 

실재로 1조라는 돈이 얼마나 큰지 보통사람들은 가늠하기가 힘들 것이다. 10의 12승이 1조에 해당한다. 큰돈인지는 알지만 몸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이 돈을 은행에 예치해 놓고 일 년에 1%의 이자를 준다면 매일 2천 7백 만 원을 써야만 이 돈을 소비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1조의 돈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재로 정책 입안자나 예산을 다루는 사람들도 수천억 단위로 늘어나면 돈에 대한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냥 숫자로 볼 뿐이지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1965년 한일협정이 맺혀지고 베트남 국군파병을 할 때 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라는 시를 썼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하고 옹졸하게 욕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로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중략) 

양심있는 기자들 그리고 문인과 지식인들이 죄도 없이 체포되어 가는데도 고작 갈비덩어리에 기름이 많다고 분개하고 힘없는 설렁탕집 안주인과 싸움질이나 하는 본인이 너무 초라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현재의 삶에 같이 적용되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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