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2023년도 우리나라 GDP예상치는 38,600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33년 만에 대략 4.8배의 성장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문턱에 다가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부분적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분야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조선업계는 건조물량과 기술면에서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19세기 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北學議)》라는 책에서 청나라 배와 우리 배를 비교하면서 우리배의 형편없음을 한탄했다. 청의 문명을 겸손하게 배우고 받아들이자는 선진적인 생각을 가진 학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보다 훨씬 발전된 대형선박 건조기술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로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사망자를 낸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후진국형 사고였다. 요즘 LH 철근 누락 부실시공으로 다시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말 우리나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삼류국가인가 우리는 이런 후진을 면치 못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다수의 학자들이 이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참사가 낳은 우리나라 위험 사회의 독특한 세 가지 문화적 인식구조를 지적한다. 

첫 번째로 “잘되겠지” 하는 근본도 없는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두 번째는 “위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는 대책도 없는 모험주의를 자랑처럼 생각하는 것과. 세 번째로는 “나는 괜찮겠지”라는 자기 예외주의가 결합해 잠재적인 위험이 폭발적으로 나타나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나만은 잘 될 거야 나에게 그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겠어! 하는 안일함이 안전 불감증을 낳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모든 분석과 진단을 하나로 묶어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이 바로 ‘압축 성장’이라고 표현했다.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사실 한국사회에서 경제적 성취가 기적이라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특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독재에 시달리는 많은 저개발 국가들에게 한국경제가 만들어낸 성공은 하나의 꿈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정치인들도 부러워했던 바로 그 핀란드의 공무원들이 아주 오래전에 개인적으로 제게 한국정도만 가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지금 와서 한국이 수많은 저개발 국가와 개발도상국들에게 중요한 모델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자랑스럽게 여기든 불쾌하게 여기든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공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압축 성장 뒤에는 기적을 만든 공로 못지않게 심각한 부작용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념이나 여야를 떠나서 대부분의 학자나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빠른 성장 속에는 비정상적인 것이 따를 수밖에 없고 많은 고통을 동반한다. 반독재 체제하에서 폭압적인 아픔도 있었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군사작전 하듯이 질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룸으로 도덕이나 자율이나 사회적 책임은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른바 ‘영혼 없는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엘리트로서 사회적으로 져야할 책무를 도외시한 즉,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것을 회피했던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를 두고 한국 엘리트층의 상당수는 좋은 학벌을 획득한 ‘벌거벗은 경쟁의 승리자들’로서 이른바 ‘천민 엘리트’라고 다소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압축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위험 감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부터 수난과 시련의 역사다. 특히 일제치하를 거치고 겨우 독립은 했지만 6.25동란을 거치며 남이나 북이나 세계 최빈국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뒤 처진 우리나라를 만회하려고 하다 보니 ‘빨리빨리’가 위험감수를 동반하게 되고 또다시 빨리빨리를 불렀다. 그때 나온 유행어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야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천민 엘리트’라는 근성을 끊고 ‘위험 감수문화’를 바꿀 때가 되었다. 즉 위험 관리 시스템으로 패러다임(paradigm) 즉 생각의 틀을 바꿀 때가 되었다. 머리에 지식이 들어가면 행동도 조심하듯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면 전환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이제는 건설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구태(舊態)를 버리고 선진국의 격에 맞는 새로운 국민적 정체성을 놓고 고민해 봐야 될 때가 아닌가. 특히 위정자(爲政者)들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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