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경제학에서 인플레이션이 진행된다는 말은 통화량이 팽창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올라 일반인들의 실질적인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통화량이 팽창하면 따라서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아가 팽창하게 되면 자아는 제 분수를 모르고 우쭐해지면서 실속 없는 속빈 강정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책이 부여되면 명함(名銜)을 새겨 자기의 위치와 신분을 나타내는 명함을 내민다. 그 명함에 새겨진 신분에 따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때 상황에 맞춰 어울리는 적절한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집안에서는 가장으로 아버지의 탈을 쓰고 직장에서는 그 직책에 맞는 가면을 쓰고, 친목회나 동창회에 나가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옛 친구 들과 장난스러운 농도 던지며 분위기에 걸 맞는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이런 것 들은 사회생활 하는데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필수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을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페르소나(persona:사회적 가면)라고 불렀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사회적 직함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할 때 나타난다. 시골출신 국회의원이 서울역 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오던 중 승무원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윽박지르며 큰소리로 나무라는 바람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몇 번을 낙선하고 겨우 동정표를 얻어 당선된 초선의원인데도 얼굴이 알려져 동향사람들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몰랐던 사람들도 옆 사람이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듣고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 의원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승무원 한사람에게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 내가 국회의원 아무개야!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어!” 당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시선은 그의 태도가 “내가 누군지 좀 알아줘!” 라고 울부짖는 진상이 벌이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여기서 이렇게 진상을 부리는 사람이 의원활동은 잘할 수 있겠는가.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이 의원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이 사람처럼 국회의원이라는 자신의 일시적인 페르소나를 자아와 동일시한 경우가 바로 ‘자아 팽창’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영국에 보건학자 마이클 마멋(Michael Marmot)은 ‘자기고양 편향’을 사회적 지위의 문제와 연결시키면서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라는 책을 2004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상대적인 지위에 대한 관심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높은 지위를 가진 것으로 스스로 평가해 자존심을 세우려는 심리적인 장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떻게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지능, 애정, 창조성, 근면 등 기준을 하나 정한 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 만약 평범한 미국인이라면 스스로를 평균보다 높다고 평가할 것이다.” 

미국인이 조금 더 심할지는 몰라도 그런 편향은 어느 나라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눈여겨 봐야할 것은 경제적으로 불평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기고양 편향에 더 치우친 것으로 나타났다. 무슨 이유일까. 

정신건강 의학자 김병수 원장은 “경제적 불평등은 경쟁을 유발시키고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아를 팽창시키게 된다.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자기 고양(高揚)이 덜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시켰더니 일본인도 미국인 정도로 심해졌다고 말한다. 즉 경제적 불평등은 경쟁을 더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할 더 우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자극한다. 사회가 불평등 할수록 더 자기고양에 빠지는 것은 경쟁에서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야 한다는 열망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살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나아져서 얻을 경제적 이익도 적기 때문에 우월해지고 싶다는 열망도 줄어들게 된다. 자본이 균등하게 배분되면 자아를 팽창시킬 이유도 사라진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평등한 세계에 사는 사람의 자기 고양정도가 불평등한 사회에 비해 약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른바 아이 자존감 키워주기 운동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런 아이들이 자존감이 고무되어 자칫 자아 팽창이 폭력성을 동반할 수도 있다. 그간 학계에서는 낮은 자존감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믿었으나 사회심리학자들 다수는 위협받는 자만심이론이라는 학설을 제시했다. 즉 자만심(自慢心)이 강한 사람일수록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아팽창은 무엇보다도 남들과 비교(比較)에서 나타난다고 보인다. 비교는 협동심이나 겸손이나 긍정적인 덕목 등은 비교하는 법이 드물다. 요즘에는 금수저인가 흙 수저인가도 많이 작용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도 그런 이유 때문에 자아팽창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마음이든 몸이든 자아팽창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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