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우리 속담에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도 의지를 갖고 실천하지 못하면 성과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획을 세우지 않은 사람과 마찬가지다. 

곽씨지허는 많이 쓰는 고사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확실한 것이 있다. 춘추시대에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착한 일을 좋아하고 나쁜 일을 미워하며 세상을 모범적으로 산 좋은 사람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남아있는 것은 폐허가 된 집뿐이었다는 이야기다.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뜨린다는 옛말이 있듯이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계산은 도리어 손해만 가져온다는 옹산이 그것이다. 

중국에서 지금까지 가장 현명한 재상이라고 하면 거의 많은 사람들이 관중을 꼽을 것이다. 그는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책으로 한때는 원수였던 제나라 환공을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첫 자리에 올린 현명한 재상이었다. 환공도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관중을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포숙의 추천에 따라 능력을 인정하고 기용해 그에 시책을 수용하므로 환상의 콤비가 되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임금과 재상이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 중에 곽씨 이야기는 600여년 후 전한말기 유향이 저술한 《신서(新序)》에 전한다. 신서는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후세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간결하게 쓴 고사 집인데 이야기 묘사도 좋고 문학적 가치도 높이 인정받는 책이다. 유향의 저서는《설원》과《전국책》으로도 명성이 높은 학자다. 

신서 잡사편에 환공이 어느 날 들로 사냥을 나갔다가 망국의 옛 성인 곽씨의 폐허가 된 집터를 보게 됐다. 근처에 사는 촌로에게 곽씨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더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사람이었다고 답한다. 의아해 하는 환공에게 촌로는 ‘선을 좋아하기만 했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고, 악을 미워하기는 했지만 역시 제거하지는 못했다.’(善善而不能行 惡惡而不能去)고 덧붙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환공이 관중에게 며칠 전 곽씨의 옛터를 보고 촌로와 했던 대화를 관중에게 털어놓았다. 듣고 있던 관중이 촌로가 누구였냐고 묻자 환공이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 환공에게 관중은‘임금역시 그 곽씨 같은 인물입니다.’고 했다. 그 임금과 그 신하와의 대화였다. 관중은 환공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함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잘못도 아니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훌륭한 명분을 지키려고만 하고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디서나 조직의 지도자라면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고 옳지 않은 것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우리 조상 중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세종대왕(世宗大王)을 머릿속에 떠 올린다. 그는 애민정신(愛民精神)이 투철했기 때문에 지금도 추앙받는 임금이 되었다. “하루가 늦어지면 10일이 늦어지고, 10일이 늦어지면 한해가 늦어진다.”(一日之延 十日之延, 十日之延 一歲之延)는 유명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다.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뛰어난 생각이 있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면 2600여 년 전의 또 한사람의 곽씨일 따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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