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내 적(敵)의 적은 정말로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동양에서 가장 많이 읽혔다는 나관중의 삼국지에 보면 위(魏)와 오(吳) 그리고 촉한(蜀漢)이 서로 물고 물리며 적이 되었다가 때로는 우방이 되어 서로 전쟁을 했다. 

언제나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은 신중하고 냉철하게 판단해야하는 것이 유능한 지도자들의 결단이다. 인간의 심리는 외교적이나 내적으로도 나의 적의 적은 나의 동지가 되는데 만약 공동의 적이 나타마면 원수끼리도 뭉쳐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내 적의 적이 내 친구인지 또는 내 친구의 적이 나의 적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더 강한지는 모호하다. 거시적인 상황에서는 후자가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두 원칙 모두 비슷하게 보인다. 

이런 심리상황을 실제로 실험을 해 심리법칙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이 튀르키에 출신의 무자퍼 셰리프(Muzefer Serif)다. 그는 1954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공원 내에 위치한 로버스 동굴근처의 야영장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셰리프 부부는 이 실험을 통해 현실갈등 이론과 최소집단 패러다임을 완성시켜 나갔고 1961년 동료들과 함께 《우리와 그들, 갈등과 협력에 관해 :로버스 동굴실험을 통해 본 집단 관계의 심리학》이라는 비교적 긴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11~12살의 소년들인데, 두 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야영을 함께 하도록 했다. 참가자 모두는 미국 내에서 중산층 이상의 청교도 가정에서자란 양친이 모두 계시는 비슷한 조건을 가진 비교적 모범적인 아이들이었다. 또한 공정한 심리를 파악하기위해 사전에 심리검사를 통해 공격적이거나 독특한 아이들은 실험 대상에서 배제시켰으며 서로 간에 모르는 사이로 각 팀을 무작위로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배치했다. 

1단계로 서로 유대감 형성을 위해 각각의 집단이 서로 모른 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팀 내에서 서로 우의를 다지며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했다. 한 팀의 명칭은 ‘방울뱀’이고 다른 한 팀의 명칭은 ‘독수리’로 정하고 서로 교류를 하지 못하게 약 1.6km떨어진 곳에서 지냈다. 

2단계로 그동안 서로 몰랐던 두 팀 간에 다른 집단의 존재를 알리고 팀별로 야구경기 등 경쟁을 하도록 시켰다. 그 결과 처음에는 언어적인 비방에만 그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물리적 폭력 사태로 발전해 가는 것이었다. 실험을 주도한 셰리프를 비롯한 주최 측 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갈등이 강력해지는 상황을 보고 추가적인 불상사를 막기 위해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3단계로 서로 갈등이 있었던 것을 해소 시키는 일을 생각했다. 두 팀이 함께 야영장 식수 공급 로를 복구하거나 진흙탕에 빠진 트럭을 서로 의논해서 끌어올리는 일과 함께 협동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자기들을 골탕 먹인다며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치고받고 하면서 협력을 함께 모색해 나갔다. 이렇게 서로 힘을 합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되었으며 서로 협력관계로 마칠 수 있었다. 

이 실험 속에서 두 가지 원칙이 드러났다. 일단 그룹에 속하게 되면 자기가 속한 그룹에 동화되어 가면서 가치관에 협력하고 소위 내 친구의 적이 나의 적이 된다는 원칙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자기가 속한 그룹의 구성원이 다른 그룹의 구성원과 마찰이 생기면 서로지지 않으려고 자기 그룹의 구성원을 위해 전원이 다툼이 생긴다. 그러다가도 궂은일을 시키는 캠프 관리인이 나타나면 어느새 서로 친구가 되어 항의하기도 한다. 

이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을 통해 집권자들이 이런 일들을 자주 이용해 왔음을 볼 수 있다. 16세기에 일어난 일본과의 임진왜란(壬辰倭亂)도 일본 내 영주들 간에 갈등을 해소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고자 조선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을 일으켰다. 현재 우리와 대치 상태에 있는 북한도 걸핏하면 남북관계를 긴장국면으로 몰고 간다. 이런 일련의 일들도 내부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쓰는 방법 중에 하나다. 일반 기업에서도 가끔 노사 갈등은 완화시키고자 경쟁사와 사활을 건 선두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기획안을 내 놓으며 사원들이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한계가 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거나 일이 해소되면 다시 부활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은 소련과 힘을 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히틀러를 막아냈지만 동맹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은 지금까지도 이념이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현재의 위정자들도 무슨 사건이 생기면 잊혀져가는 이슈를 꺼내서 쟁점화 시키는 것도 바로 ‘로버스 동굴 공원 실험’에서 나온 잠시 눈을 돌리게 하는 수법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영광군민신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