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우리 속담에 ‘봄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란 말이 있다. 3월에 봄이 시작되어도 여전히 겨울처럼 춥고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노인이라고 하지만 기력이 왕성해 젊은 사람처럼 정정해 보인다. 이렇게 당장은 대단해 보이지만 봄추위와 노인의 건강은 그래봤자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오래가지 못하거나 믿을 수 없을 때 비유적으로 쓰는 말이다. 봄에 꽃이 필 시기에 추위가 오면 우리는 ‘꽃샘추위’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겨울이 꽃을 시샘해 추워지는 날씨를 말한다. 강추위와 폭설로 꽁꽁 얼었던 얼음과 눈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녹으며 봄이 오는데 마지막 심술을 부리지만 며칠 가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무더웠던 여름도 입추 처서를 거치면 기가 꺾이고 연세 많은 노인이 건강하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비유다. 조선말기 풍류시인 김삿갓은 너무 오래 사는 것을 욕)이라고 했다.  ‘늙음을 읊다.’는 시에서 오복 중에 누가 장수를 으뜸이라고 말 했나, 오래 살면 욕이라고 말한 요임금이 귀신같구나.(五福誰云一日壽 堯言多辱知如神) 

오복(五福)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에서 바람직한 다섯 가지 복을 말하는데 현실과는 조금 다르다. 서경에서 제시하는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그러나 우리나라〈통속편〉에는 수, 부, 귀(貴), 강녕, 자손중다(子孫衆多)로 서경과는 조금 달리하고 있다. 우리들은 보통 이(齒)가 좋은 것이 오복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오복에 들어가지는 않고 이가 좋으면 대체적으로 건강하고 또한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어서 오복이라고 했던 것 같다. 이런 오복 중에 예전에는 오래 사는 것을 으뜸으로 생각했었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비유로 봄의 추위와 노인의 건강을 결부시킨 이 성어는 조선 효종때 홍만종이 늘그막에 병상에 누워있을 때 속담을 한역하고 단군 이래로 간단하게 역사를 정리했는데 보름 만에 완성했다고 하여 《순오지(旬五志)》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봄 시샘추위와 건강해 보이던 노인의 건강은 오래가지 못해 믿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 후 조재삼(趙在三)이 엮은 백과사전(百科辭典)류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다양한 주제를 설명하면서 ‘봄추위와 가을더위 그리고 노인의 건강 세 가지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다가 요즘은 주춤한데 ‘백세 인생’이라는 대중가요가 히트를 쳤다. 육십 세 부터 시작하는 이 노래는 백세를 거쳐 백 오십 세 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요즘은 백세 된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봄철과 가을은 기후 변화로 더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상대적으로 더 길어지는 느낌이 든다. 가을 더위와 봄추위가 짧은 것은 맞는데 노인 건강은 이제는 제외시켜야 할 것 같다. 세월이 갈수록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생물학자는 모든 생물은 성장기의 여섯 배를 살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장기를 20년만 잡더라도 120살 까지는 살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춘한노건을 ‘봄추위에도 노인의 건강은 여전하다’로 바꾸어 해석해보면 어떨까? 물론 예나 지금이나 장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램 이지만 내발로 걷고 내 뒤처리를 할고 살 수 있을 때 까지를 말하고 남의 손이 미쳐야만 살고 있는 것은 삶이라고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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