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모임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막 60대 후반에 들어선 후배이야기다. 동창 모임이 열리는 식당에 조금 늦게 도착해 방문을 열다가 황급히 문을 닫았다. 왁자지껄 떠드는 쭈그렁얼굴들 모습에 놀랐다. 다른 방문을 잘못 연줄 알았단다. “왜, 안 들어오고---” 소리에 깨닫고 보니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 ‘나도 저렇게 늙어 보이겠구나!’ 싶어 그 다음부터 동창회에 안 나간다”는 고백이다.

머리가 하얀 한 친구는 ‘할아버지’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다고 한다. 여럿 있는데서 한 젊은이가 자길 보고 자꾸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정말 듣기 거북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70대 초반인 네가 할아버지 아니냐?’고 묻자 “어린애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30~40대 젊은이가 나를 그렇게 부르니 화가 나더라”고 말한다.

법으로는 65세가 넘으면 노인이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65세 넘은 인구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시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몇 살이 되어야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할까. 2014년 1만 여명 노인을 상대로 한 조사(데이터뉴스 통계센터)에 따르면 가장 많은 노인들이 인정하는 ‘노인나이’는 70~74세이다. 응답자 46,7%가 이 나이를 ‘노인’으로 생각했다. 65~69세에는 18%만이 동의했다.

왜 많은 사람들은 65세가 넘어도 노인으로 인정받기(?)를 불쾌하게 여길까? 젊어 보이고 싶고 오래살고 싶은 건 본성이다. 또 금전만능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을 잘 못 버는 노인은 존경받는 대상도 못되니 젊어지려는 건 당연한 이치이겠다. 그러나 젊은 나이가 가장 행복한 나이는 아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영국의 데일리 미러가 조사한 가장 행복한 나이는 ‘74세’이다.

우리나라 96세 철학자 김형석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65세에서 75세 사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고 무엇이 참으로 좋고, 무엇이 소중한지를 음미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젊은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6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한다.

동창회를 기피하는 후배나 할아버지라 불리기를 싫어하는 백발친구는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나이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그들은 지금 60대, 70대 노인이다. 김교수나 통계가 말하는 가장 행복해야할 나이이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이순간이 가장 행복하니까.’라는 말이 나온다면 정말 바람직할 터이다. ‘까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의 경지이다.

나의 현재는 어떤가.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까?’ 자문해본다. ‘자신이 없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지 아닌지---. 나이가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다만 확실한 것은 예전나이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예전에 겪었던 일들을 되풀이해 견뎌낼 자신이 없다. 그 일이 고생스러웠던지, 즐거웠던지 간에---.’

결국 모든 이야기는 어떻게 이야기해도 행복에 대한 이야기로 모아진다. 난 행복 하고 싶을 때마다 외우는 주문이 하나있다. ‘까르페 디엠!’. 그러나 그 주문을 자주 외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까르페 디엠은 외짝다리 같아 홀로 설수 없다. 까르페 디엠이 제대로 서려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다른 다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순간인 현재를 잡으려면 죽음이라는 한계가 있어야한다.

“아무리 좋은 문장도 마감에 몰려야 나온다”라는 도올 김용옥의 말처럼 삶이 아름답게 빛나는 때는 죽음이라는 마감을 기억하고 몰릴 때부터이다. 마감이 닥쳐서야 좋은 글이 써지듯 시한부를 느껴야 인생도 집중력이 높아진다. 죽음을 기억할수록 순간순간이 더 값져진다. 문제는 죽어보지 못한 인간이 어찌 죽음을 기억할 수 있나. 삶의 마감도 알 수 없다.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살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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