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나온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힘이 장사이면서 거인인 노상 강도였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었는데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고 집으로 안내해 침대에 눕혀 키가 침대보다 길면 긴만큼 잘라내고 침대 길이에 미치지 못하면 부족한 만큼 늘려서 죽였다. 그 침대는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어떤 사람도 침대에 맞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침대에 누운 사람은 누구든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동양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삭족적리’로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의 손자 유안이 빈객들 그리고 방술가 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 쓴 책《회남자》에 나와 있다. 모두 21권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도가와 음양가 그리고 유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방면에 대해 언급하므로 백과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봉건통치를 위해 법을 절대화하며 군주를 최고 통치자로 하는 중앙집권 체제를 반영하고자 하는 다양하고 폭넓은 책이다.  

17편 설림훈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소리가 있는 소리를 듣는 자는 귀머거리이고 소리가 없는 소리를 듣는 자는 총명한 사람이다. 귀머거리도 아니고 총명하지도 않다면 신명과 통하는 것이다. 점을 치는 자는 거북을 손에 쥐고 점대로 점을 치는 자는 대쪽을 가지런히 하고 운수를 묻지만 어디에다 그것을 물을 것일까! 춤추는 자가 절도 있게 움직이면 앉아있는 자가 뜻밖에 손뼉을 치며 모두 다 한결같은 것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같기 때문이다.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들어간다. 그 움직이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잠깐 사이에 사람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사람들은 용을 부리는 것은 배우고 싶어 하지만 모두 말을 부리는 것을 좋아한다. 귀신을 다스리는 것은 배우고 싶어 하지만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배우는 것은 쓰이는 바가 급하기 때문이다. 문짝을 부수어 땔감으로 삼고 우물을 메워 절구로 사용하는데 사람들이 일을 따르는 것은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물과 불은 서로 미워하지만 세발달린 구리그릇이 그 사이에 있으면 다섯 가지의 맛이 조화를 이룬다. 골육끼리 서로 사랑하지만 그 사이를 이간질하면 부자간에도 위태로워진다. 무릇 기르는 바로써 길러야할 백성을 해치는 것은 비유하자면 발을 깎아내어 신발에 맞추고 머리를 깎아내어 갓이 편하게 하는 것과 같다.(夫所以養而害所養 譬猶削足而適履 殺頭而便冠)

어떤 일에 선후(先後)를 무시하고 적합하지 못한 규정에 얽매여 수단과 방법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비웃는 말이지만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말한다. 신발과 갓을 발과 머리에 맞추는 것을 당연한 상식인데 현실을 무시하고 신발과 갓에 맞추기 위해 발과 머리를 깎는다면 인간을 참아내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 

서양에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나 동양의 ‘삭족적리’나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요식적으로 끼워 맞추고 타인에게 끼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독단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특히 위정자들이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면서 억지로 맞는 말을 가져다 붙여 땜질 방식으로 일관하는 일을 말하기도 한다. 요즘 흔히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있으니 넌 대답만 하면 돼)’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이미 답을 정해놓고 요식행위를 하는데 적합한 단어로 보인다.《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정인매리(鄭人買履)와 같은 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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