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내가 로또에 당첨 되었다면 그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까. 남은 생을 마냥 행복하도록 정말 인생 역전이 될까. 답은 그렇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교수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 교수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행복감에 대해 연구를 해서 발표를 했다. 로또를 포함한 복권으로 큰돈을 획득한 사람들은 평균 3개월을 기점으로 당첨되기 전과 같은 크기만큼 행복하거나 불행해 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반대로 예기치 못한 사고나 뜻밖의 재난으로 불행을 경험한 사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3개월이 지나면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웃을 수 있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 박용철은 이 연구 결과를 보고 당황해 하면서 “격하게 좋은 일이 있어도 혹은 나쁜 일이 있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감정 상태로 다시 돌아간다는 이 실험 결과가 참으로 이상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깔고 《감정은 습관 이다》라는 책을 2013년 출간하면서 ‘감정 습관’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 책에서 과연 감정 습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A에 관한 이야기로 전개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냈다. 여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 부모와 함께 지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갈 때에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고 A의 뒷바라지를 하며 그토록 원하던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하던 일이 이루어져 마냥 즐거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동안 혼자 지내며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왠지 방해받는다는 느낌에 생각이 답답하고 짜증스럽기 까지 했다. 그래서 홀로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면서 대학을 다니기로 했다. 이에 대해 박용철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설령 그것이 정말 원하던 것이라 해도 낯설게 느껴지면 우리의 마음은 그것을 버리고 익숙한 것을 택합니다. 이것은 행동뿐만이 아닌 감정도 습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A의 마음은 외로움과 쓸쓸함이라는 감정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참 싫어했지만 결국 본인이 그 감정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스스로 찾아간 것이지요.”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뇌(腦)는 유쾌하고 행복한 감정이라고 해서 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쾌한 감정이든지 불쾌한 감정이든지 이미 내게 익숙한 감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일지라도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면 뇌는 그런 감정에 젖어 있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 공황장애에 걸리는 연예인들의 예를 보면 뇌의 그런 속성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인기가 생명인 스타 연예인들은 무대 위에서 자극적이고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희열을 경험한다.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쾌감을 맛보며 자신의 정체성이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어쩌면 이런 순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지 모른다. 

인간의 뇌가 이미 익숙한 것들에 친숙한 이유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욘스(Robrt Zajonc)는 “적어도 친숙한 환경에 있을 때는 잡아먹힐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내 놓았다. 이 이론을 토대로 인간의 친숙성 선호본능을 발전시켜 ‘단순 노출 효과’라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자주 보면 볼수록 호감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 노출효과를 ‘친숙성의 원리’라고도 부른다. 

단순 노출 효과 즉 친숙성은 학문 세계에서도 나타난다. 양자이론의 기초를 정립한 이론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잘 설득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자들이 결국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세대가 성장해서 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던 그 새로운 사실에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진리로 인정받는다.”고 했다. 

한번 경로가 정해지고나면 이용의 관성과 경로를 중심으로 이미 형성된 기득권 때문에 좀처럼 바꾸는 것이 어렵다. ‘경로 의존’은 제도나 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렇게 익숙한 것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은 습관 때문이다. 인간이 삶속에서 편한 것을 추구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에 가까운 습관을 가질 수는 없을까? 이것은 행복에서 멀어지는 습관을 바꿀 수 있는가이다.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중용(中庸)》에서 인용한 등고자비(登高自卑) 행원자이(行遠自邇)가 생각난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하고, 먼 곳을 가고자 하면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누구나 아는 사실 즉, 작은 것부터 하면 쉽게 될 것 같지만 실천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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