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이지 않은 고릴라’라는 짧은 동영상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와 일리노 대학의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는 농구공을 패스하는 두 팀이 나오는 동영상을 만들었다. 흰색 셔츠와 검은색셔츠를 입은 각각 3명씩 같은 색 팀끼리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이다. 동영상 시청자들에게 흰색 입은 선수들의 패스 횟수를 세도록 주문했다. 

동영상을 시청하는 학생들이 몰입과 집중을 하는 동안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한 학생이 코트를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가며 가슴을 두드리고 이상한 행동을 한 후 약 9초 동안 머물다 사라진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면서 패스 횟수에 집중한 학생들 절반정도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 학생들은 고릴라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이른바 ‘투명 고릴라’로 알려진 유명한 연구 실험이다. 이 실험은 1999년 퍼셉션(디자인 컨설팅 전문업체)에 발표되면서 놀랄만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특히 영국 BBC-TV에 방영 되었을 때는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놀라워요. 내가 고릴라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내가 삶 속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을 것 같아 다시 뒤돌아보게 됩니다.” 등등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이 실험은 인간의 주의력 착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평가되며 인간의 인지 능력에 대한 상식과 고정관념을 뒤엎었다. 이 실험은 심리학 분야를 넘어서 다양한 분야의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공을 패스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며 고릴라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믿음의 힘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면서 이 실험을 부교재로 사용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말한다. “가장 많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행동 심리학자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행태를 관찰하는 전문가 그룹인데도 고릴라를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들 중 다수는 스스로 충격을 받았고 일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보여준 것과 다른 2개의 동영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을 정도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지각력에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의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Richard Watson)은 이 실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명백한 것조차 못 볼 수 있으며 자신이 뭔가를 보지 못한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이 실험의 핵심은 우리의 관심사가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관심은 유한하며 따라서 우리가 무엇 내지는 누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지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전체를 한 번에 다 보지 못하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마술(魔術)이다. 마술사들의 손이 우리의 눈보다 빠르기 때문에 눈속임이 가능하다. 미국의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1983년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시행한 유명한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는 “만약 내가 당신의 주의를 모으고 그것을 특정 대상에 고정시킬 수 있다면 당신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마술은 속임수인지 알면서도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지만,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무주의 맹시’는 결코 즐거운 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이 괴짜 저널리스트로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이비드 맥레이니(Divid McRaney)는 《착각의 심리학》에서 ‘무주의 맹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무주의 맹시의 문제점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주의 맹시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 앞에 펼쳐진 온 세상을 본다고 착각한다. 증언이나 면밀한 조사가 중요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인식과 기억이 완벽하다고 믿는 경향 때문에 본인의 마음과 다른 이들의 마음을 판단할 때 실수를 빚게 된다. 인간의 눈은 비디오카메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억도 당연히 비디오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고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하며 특히 자기가 본 것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기가 본 것이 진실이라며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끝까지 주장하면 자기에게 절대 인정할 수 없는 확신이 되며 ‘고정불변’이 된다. 그러나 앞에 동영상에서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처럼, 우리가 있었지만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 자문(自問)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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