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며 치욕을 견디면서도 마음에 큰 뜻을 품은 사람은 미래의 더 큰 것을 위래 부끄러움을 감수 한다는 말이다. 학교 동급생들이나 동네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어오면 정말로 힘이 없어 치욕을 당하게 되면 그 수치가 평생 갈 것이다. 요즘 어린 시절 소위 학교폭력 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힘이 있어 이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참고 치욕스럽지만 불량배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간 사람이 있다. 

《한서(漢書)》 한신전(韓信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신은 회음후 출신으로 어릴 적에 집이 가난했다. 능력은 있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벼슬자리도 얻지 못하고 장사꾼이 되어 돈을 벌지도 못해 늘 남에게 신세를 지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향(下鄕)의 정장(亭長:요즘의 이장 격)으로 있는 친구에게 빌어먹은 적도 있었는데 정장의 아내가 못마땅하게 여겨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식사를 끝내버렸다. 식사 때가 되어 갔는데 밥상이 나오지 않자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 집을 다시는 찾지 않았다. 

어느 날은 회수(淮水)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빨래를 하는 아낙네가 한신의 굶주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밥을 준적이 있었다. 며칠을 밥을 얻어먹고 난 뒤 한신도 미안해하며 “제가 나중에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고 하자 듣고 있던 아낙네는 화를 내며 “젊은 대장부가 제 힘으로 먹고 살아가지도 못하니 그대가 불쌍해서 밥을 준 것이니 나는 보답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소.” 라고 말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한신을 보고 동네 무뢰배 한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비를 걸어왔다. “당신은 칼을 차고 있지만 누구와 싸워봤는가? 용기가 있거든 그 칼로 나를 찌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 물끄러미 쓴 웃음을 지으며 무뢰배를 쳐다보고 있던 한신은 머리를 숙이고 그의 가랑 밑을 지나갔고,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대인 한신은 한주먹 거리도 안 되지만 이런 작은 시비 거리로 사람을 해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굴욕을 참았다. 불우했던 젊은 시절 한신은 이처럼 미천하고 무능력한 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한(漢)나라의 장군이 되어 유방의 군사를 이끌며 항우(를 이기고 고향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어려웠던 시절 밥을 먹여준 정장과 빨래하던 아낙에게 천금으로 은혜를 갚았고 저자거리에서 모욕을 주며 가랑이 밑을 기어가라고 치욕을 줬던 무뢰배에게는 치안(治安)을 담당하는 중위에 임명하면서 말했다. “분을 참지 못하고 만일 그때 당신을 죽였으면 지금의 이름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때 참았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한신은 불행했던 과거를 탓하지 않고 이루고자 하는 큰 뜻이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 작은 치욕정도는 기꺼이 감내하고 처신했다. 여기서 비롯되어 ‘수과하욕’은 훗날의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잠시의 치욕이나 고생을 감수 할 줄 아는 담대한 성품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과하지욕이라고도 쓰는데 같은 말이다. 그러나 요즘에 큰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주 작은 지적에도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하며 참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그릇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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