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이지만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쓰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대답할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름이다. 내 고유의 명칭 바로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2008년 이후로 한해 평균 15만 여명이 자기 이름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약 94%가 새 이름으로 나머지 6%는 그대로 부르되 한자만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남들이 듣기에 어색하거나 이상한 이름을 가진 이들 뿐만 아니라 무난한 이름인데도 느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개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해 개명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 범죄 사실을 숨기거나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누구든지 자기 뜻만 있으면 바꿀 수 있다. 이른바 ‘멘탈’의 영향을 받아 개명을 많이 하는 편인데 1983년 이후 우리가 익히 아는 야구 선수만 해도 2013년 까지 39명이 개명을 했다. 

영국에 극작가 윌리엄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장미는 무엇이라 부르건 장미의 향기는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그건 옳지 않은 생각임이 드러났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에드먼드 롤스( Edmund T. Rolls)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사물의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이 실제로 냄새를 느끼는 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장미를 호박꽃이라고 부르면 향기가 덜하지만 혐오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사물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면 냄새 또한 나아진다는 것이다. 사람 이름도 마찬가지다. 실험 결과 미국인 이름 중 Michael(마이클), James(제임스), Wendy(웬디) 등은 능동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Alfreda(엘프리더), Percival(펄스벌), Isadore(이사도르) 등은 수동적인 느낌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교수들은 시험 채점 시 익숙한 이름에게 유리한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실제로 하버드대학에서 특이한 이름을 가진 학생들의 낙제 비율이 평범한 이름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무의식 적으로 자기 이름과 유사한 문자를 가진 직업과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를 가리켜 이른바 ‘이름 효과’라고 한다. “이름 석 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말이 시사 하 듯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암묵적 자존감’이 그 원인일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이나 이름이 비슷하게 들리는 사람을 선호하는가 하면 결혼도 많이 이루어 졌다는 통계도 있다. 사람들에게 무엇에든지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직관에만 의존해 판단하라고 하면 대개 자기 이름의 첫 글자와 같이 시작하는 제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본인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름이 직업, 거주지, 배우자, 제품 선택에 영향을 미쳤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묻는 이 에게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스스로는 선택하는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름 효과는 넓은 의미에선 이름이 낳을 수 있는 모든 효과와 연관성을 가리킨다. 미국의 인류 사회학자 비키 쿤켈(Vicki Kunkel)이 《본능의 경제학: 본능 속에 숨겨진 인간 행동과 경제학의 비밀》에서 지적한다. “우리 몸의 DNA는 로큰롤(rock’n’rol:195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다른 소리를 내는 이름에도 다르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2005년 노스웨스턴대학 경제학자 데이비드 피글리오(David N. Figlio)는 여자아이의 이름이 여성스러울수록 고등학교에서 미적분 수업을 들을 확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여자들은 스스로 여성적인 이상형과 결부시키며 별로 여성스럽지 않은 여자들에 비해 부모나 교사 동료들에게 조직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기 때문에 인문학이나 외국어 등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많이 택하는 교과목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수학이나 과학 같은 학문 분야는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연구의 적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스티브 아얀(Steve Ayan)은 《심리학에 속지마라: 내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심리학의 진실》에서 ‘그런 연구를 성공에 눈먼 허무맹랑한 실험’으로 간주하면서 그런 실험들이 이루어지는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매년 2400권의 심리학 전문잡지에 10만 편의 연구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이런 정보 홍수 속에서 그중 가장 기묘한 것들이 화제가 되는데, 대중 매체가 개입하면 특성상 방법적인 결함과 제한성에는 대범하게 외면한 채 세간의 눈을 돌린다.”

아얀의 주장처럼 이름 효과는 과연 성공에 눈먼 허무맹랑한 실험인가? 그렇게 보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이름이 직업, 거주지, 배우자, 제품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며 의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2000년대 들어 이 첨단 시대에 매년 15만 여명이 개명을 하는데 허무맹랑한 미신에 사로잡혀 그런다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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