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부계혈통 사회로 내려온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성(姓)씨의 일가(一家)와 성이 다른 혼인관계로 이루어진 인척, 즉 친사촌을 포함해 고종(姑從), 이종(姨從), 외종(外從)을 아울러 인척(姻戚)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을 합해 사(四四寸)은 촌수가 같다고 하는데 서로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가깝고 멀게 느껴진다. 

친척을 엄격히 따진다면 8촌 이내의 친족(親族)과 4촌 이내의 인척(姻戚)으로 한정되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처럼 오히려 친인척보다도 이웃과 잘 지낼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고사에서는 이 인척을 나타내는 말로 오이 과(瓜)와 칡 갈(葛)자를 써서 과갈(瓜葛)이라고 했다. 덩굴이 많은 오이와 칡에서 뻗은 덩굴이 서로 엉켜서 가지와 잎으로 번져 나간 관계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 같다. 

오이 과(瓜)자는 글자 모양을 파자하면 팔(八)자가 두 개 겹쳐있다고 8+8은 16이므로 이팔청춘 이고 8x8은 나이 64세를 말하기도 한다. 오이과 자가 들어가는 고사 중에 과숙체락이란 말이 있는데 오이가 익으면 저절로 꼭지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무엇이든지 때가되어 완숙 되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할 때 많이 인용해서 쓰는 말이다. 과만초(瓜蔓抄)는 오이 덩굴을 걷어 낸다는 뜻인데 그 일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처벌한다는 말과 같이 그 덩굴이 서로 얽힌 인맥이나 인척관계를 비유하는 말이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친족이나 인척이나 차이를 두지 않고 가까이 지내면 친척처럼 지낼 수 있다. 남이라고 해도 이웃에 살면서 정을 나누면 형제보다도 귀할 수 있고 친하게 지낼 수 있다. 사돈이든 팔촌이든 자주 만나지 않으면 남보다 못하다. 

모든 인간들의 관계는 지내기 나름인데 문제는 요즘에는 혈족이라고 해도 핵가족이 대부분이고 주거도 도시에서는 아파트 생활이 많아 이웃들과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삭막한 도회생활에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지낸다면 과갈관계를 만들어 층간 소음이나 서로 이견이 발생한다고 해도 쉽게 해결 될 텐데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칡과 오이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감고 올라가 잎이 풍성해서 과갈(瓜葛)이란 말을 쓴다. 그런데 등(藤)나무는 칡과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올라간다. 칡은 왼쪽으로 감는 덩굴 식물이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는 덩굴 식물이므로 같은 나무에 칡과 등나무가 함께 감아 올라가면 서로 얽혀 풀기 어려운 모양이 되어 버린다. 거기에 칡과 등나무는 줄기가 질겨 자르기도 힘들다. 뿌리 역시 질겨 이 두 나무는 예전부터 집안에는 절대 심지 않는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갈등(葛藤)인데 현대사회에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집단 및 단체 간의 갈등도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여러 가지 갈등이 많지만 쉽게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장기적인 갈등으로 이어져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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