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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의 觀風]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약탈문화’ … 라인야후의‘일본기업化’움직임김 성 시사평론가
영광군민신문 | 승인 2024.06.18 17:36 |

한국의 대표적인 플랫폼 네이버가 일본에서 13년 동안 공들여 키워온 ‘라인야후’의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느냐 마느냐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라인야후는 일본 내 9600만 명이 사용하는 일본 ‘국민 메신저’이자 타이·대만·인도네시아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는 등 이용자가 2억 명에 달하는 성공적인 플랫폼이다. 라인야후는 한국의 네이버와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50%씩 주식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세금은 일본에 내는 일본기업이면서 한·일 기업이 공동소유한 셈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총무성이 2023년 11월에 라인야후의 위탁업체인 네이버클라우드를 통해 44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며 올 3월 5일과 4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행정지도에 나섰다. 핵심 내용은 라인야후를 위탁관리하고 있는 네이버를 경영체제에서 제외하는 개선책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네이버가 가지고 있는 라인야후 지분을 소프트뱅크가 인수해 확실히 ‘일본기업화’ 하라는 것이었다.

라인야후에 투자한 민간기업끼리 협의를 통해 경영권을 이동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나서서 경영권에 간섭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내에서 “일본이 한국기업을 약턀해가려 한다” “한일경제협력조약위반이다”는 주장이 높아졌고, 한국 정부도 4월 말부터 “한국의 기업이 불이익을 받으면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네이버는 ‘지키라’는 한국의 여론과 ‘내놓으라’는 일본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 사이에서 처신하기 어렵게 됐다. 이 문제가 한일정상회담의 주제로 올랐기 때문에 향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민간기업 ‘일본기업화’ 시도
일본 정부가 이처럼 기업 경영에까지 간섭하게 된 것은 일본에 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국민메신저가 없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그 틈을 파고들어 일본에서 뿌리를 내렸고, 경제적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일본 기업인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해 데이터 주권을 내세우며 ‘틱톡금지법’을 발효하자 일본정부도 따라나선 것이다. 적대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틱톡이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빼내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우방국이자 안보협력국이기도 한 한국을 상대로 이런 짓을 했다는 점에서 괘씸하다. 막말로 한국을 반(半)적대국으로 보거나 아니면 한 수 아래로 무시하는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행위는 과거에도 있었다.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통해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서도 끊임없이 교과서를 왜곡해 왔다. 비인도적 행위를 심판하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2019년 7월 화이트리스트 국가(수출허기신청 면제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며 보복했다.

일본의 ‘약탈문화’ 때문
렇다면 한국에 대해 ‘습관적 견제’를 하고있는 일본은 과연 어떤 국가인가. 일본은 과연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역사적 배경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섬사람(者) 근성과 약탈문화가 삶의 근저에 깔려있는 국가이다. 일본은 지정학적으로는 안전한 곳에 위치해 있으나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20% 미만이고 그나마 척박해서 항상 뿔뿔이 나누어진 채 서로 싸우고 살았었다.(김화진. 『지정학과 모빌리티』 2024. 더벨) 일본 역사를 보면 내전에서 승리한 쪽의 지도자는 자기를 따랐던 다이묘(大名, 일본 봉건의 영주)와 무사들에게 농토를 나누어 주었다. 전쟁이 일어나도 내부 반발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평소에도 국민이 꼼짝 않고 현실정치를 수용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이유는 내전과 약탈물의 분배가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코와 귀까지 약탈해간 왜군
일본 국토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부터 7년간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국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 이 시기에 일본이 저지른 조직적인 약탈행위를 보면 오늘날 라인야후를 통째로 먹으려는 일이 왜 일어났는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학살, 질병, 굶주림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만~150만 명, 코와 귀를 베인 조선인이 적어도 10만 명, 일본에 끌려간 전쟁포로가 9만~14만 명이나 됐다. 살육한 조선인 수급을 일본까지 보내기가 쉽지 않자 귀와 코만을 잘라 소금에 절여 일본에 보내면 포상과 영지를 주었다. (정재정,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 효형출판, 2007) 일본 교토(京都)의 귀무덤(이총)과 코무덤(비총)이 유명하고, 귀무덤은 다른 여러 곳에도 있을 정도였다.

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기도 했다. 일본군은 전투부대 뿐만 아니라 특수임무를 맡은 6개의 부대를 운영했다. 그 부대는 도서부(전적류 수집), 공예부(자기류, 종 등 각종 공예품 약탈 및 목공, 직공, 토공 등 기술자(工匠) 납치), 포로부(젊은 남녀 납치), 금속부(병기, 금속예술품), 보물부(금은 보화, 진기한 물품), 축부(가축 포획) 등 이었다. 왜장(倭將)들이 닥치는 대로 약탈해 히데요시에게 보낸 수많은 전리품들은 그가 갖거나 왕과 각 다이묘(大名)에게 나누어줘 집안의 가보(家寶)로, 또는 신사(神社)와 사찰에 깊숙이 보관되었다. 약탈 문화재 대부분은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남 영광에서 포로가 된 유학자 강항(姜沆)은 일본에 주자학을 전파했다. 도공 박평의와 심당길은 남원성 전투에서 포로가 된 병사들과 함께 끌려가 사쓰마(薩摩)도자기의 기반을 다졌고, 이삼평(공주 금강변 거주)은 백자를 재현해 아리타야키(有田燒)로 유명해졌다. 경복궁 안 법당에 있던 백제6층석탑도 히데요시에게 바쳤다.

왜장들은 특히 책을 약탈하는데 집착해 ‘책의 제노사이트(집단학살)’라고 불리기도 했다. (강명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 상상, 2014.) 책자 외에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훈도방의 주자소와 경복궁 안의 교서관 주자소를 습격해 동활자와 인쇄기구를 약탈해 갔다. 이로 인해 일본에 출판문화가 활성화됐다.

교과서, 잘못된 對韓觀 주입
일본은 약탈뿐만 아니라 수백 년이 지나도록 ‘조선정벌’ ‘삼한정벌’(일본에서 쓰는 단어)을 주제로 한 교과서는 물론 전승지 엽서를 끊임없이 출판했다. 1884년 간행된 ‘소학중등과독본’은 전체 33과 가운데 제1과가 ‘히데요시 조선을 정벌하다’였다. 3과까지도 관련 내용이었다. 일본의 축제 가운데도 ‘삼한정벌’이 주제인 것이 아직도 남아있다.

1909년 9월 일본군이 한국에서 벌인 ‘남한대토벌작전’을 기록한 ‘임시한국파견대의 남한토벌 실시보고서의 건’이란 문건에도 한국을 보는 시각이 담겨있다.

‘전라남북도의 한국인은 청일·러일전쟁에서 한번도 우리 군대의 활동을 목격한 바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 진가를 모르고, 임진년(임진왜란)의 옛날 ‘문록의석(文祿の昔)을 몽상해 일본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단호하게 대토벌을 결행하고 파견대의 전력을 기울여, 전라남도의 산야를 유린해서 적도(賊徒)를 하나도 남김없이 근절하고, 남추·북육(北陸)·산간·도서의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황군(皇軍)의 엄숙함과 용감함 무위에 경탄하고 전율케 하여, 일본 역사상의 근본적인 명예회복을 해야만 한다’

일본군의 원래 목적은 의병때문에 곡창지대의 쌀 반출이 쉽지 않자 이를 소탕해 경제침략의 길을 트고자 했다. 그런데 임진왜란때 이순신의 수군 때문에 전라도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역사상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두 번째 목표로 삼은 것이다. 그 근거로 일본군이 1910년 제작한 대토벌 기념사진첩에 우수영 이순신 대첩비 위치, 진주 촉석루 밑의 암벽, 명량해전에서의 이순신 송덕비 사진이 들어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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