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수수께끼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즉사했고 다행히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 되었다. 그런데 의사가 소년의 수술을 시작하기 직전 소리를 치면서 “나는 이 아이를 수술할 수 없습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어떻게 된 사실일까? 심리학자 미카엘라 위프먼과 데버러 벨이 심리학과 제자들을 197명과 7~17세 어린이 103명을 대상으로 이 수수께끼를 물어본 결과 대답은 다양하게 나왔다. ‘사망한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었다.’ ‘게이 부부였다.’ ‘의사가 정신이 이상했다.’등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다. 그러나 정답은 “의사가 소년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 실험 결과 정답을 맞힌 사람은 15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정답자 비율은 22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보통 의사는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인지적 개념 틀’을 가리켜 ‘스키마’라고 한다. 우리말로 도식(圖式)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스키마가 널리 쓰이는 외래어기 되었다. 스키마는 경험을 통해 뇌가 조직화한 지식의 틀에 근거해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처음 접하는 공을 뇌가 선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야구공이나 축구공의 정보와 비교해 이해하는 식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눈이 내리고 따뜻한 가족 영화, 도시에서는 빨간 양말속의 선물, 교회 종소리, 크리스마스카드가 연상되는 것도 바로 ‘스키마 현상’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특정 경험과 함께한 이벤트를 하나로 묶어 기억한다.”며 “어려서부터 겪은 크리스마스 경험이 비슷한 시기가 되면 스키마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스키마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지식은 보통 두 가지로 분류 된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가 경험한 어떤 구체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기억하는 일화적 지식이고, 또 하나는 구체적인 사건과는 무관하게 일반화한 개념적 지식이다. 스키마 이론은 이 두 종류의 지식 모두를 총칭하는 추상적 개념과 이들을 조직화하는 고도의 정신 작용이다. 

스키마는 그리스에서 온 단어로 원래는 형태나 계획을 뜻 했다. 스위스 심리학자 장 피아제가 1926년 최초로 사용한 이후 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스키마이론을 체계화 시킨 이는 영국 심리학자 프레더릭 바틀렛이다.  

바틀렛은 1932년 출간한 회상 실험 심리와 사회심리의 연구에서 기존의 행동주의를 대체하 게 된 인지 혁명의 단초를 열었다. 그는 낯선 자료를 주면 피험자들이 자신의 과거 경험을 따라 선택적으로 회상 한다며 이것을 ‘의미를 추구하려는 노력’ 이라고 했다. 그는 의미적으로 체제화 하려는 이러한 기억의 성질을 반영하려는 의도에서 스키마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기억해 낸다는 것은 고정되어있고 생명이 없는 수많은 단편적인 흔적들은 다시 자극해 내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능해지는 구성, 즉 재구성이며 활성화된 전체 덩어리로서의 과거 경험을 지향하는 우리의 태도 관계로부터 구축된다.” 

특정 인종이나 지역민에 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긴 역사를 이어오는 것도 스키마 이론과 무관하지 않다. 비교적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이지만 지역  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호남은 대체적으로 진보성향이 강하고 영남지방은 보수성향이 짙다. 이것도 내 머릿속에 이미 형성되어있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이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어려서부터 생각과 이념이 그쪽으로 치우쳐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서 주장할 수는 있지만 어떤 것이 참에 가깝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스키마 이론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그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고 한다. ‘자기 이행적 예언 현상’과도 유사한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이 활성화되면 스키마 형성을 위한 뇌의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네덜란드 심리학자 크리스토프 님베겐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우리가 문제 해결과 또 다른 지적인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 하면서 훗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식 구조, 즉 스키마를 형성하기 위한 뇌의 능력을 감퇴 시키고 있음을 의미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새롭게 변화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그 덕분에 고정관념이나 편견도 사라지기도 하고 약화될 것으로 사료된다. 우리는 입으로는 고정관념 타파와 열린 마음을 버릇처럼 외친다. 그러나 스키마가 작동하고 있는 우리의 두뇌는 열린 마음을 쉽게 허용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뇌의 그런 능력이 첨단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감퇴한다고 하니 열린 마음도 아울러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이기에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 

영광군민신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