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파면됐다. 하고도 오는 21일 검찰 소환을 앞둔 피의자 신분이 됐다. 헌정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본인의 불행이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참담한 심정일 게 당연하다.

돌이켜보면 참 별난 대통령이었다. 입만 열면 국민을, 그리고 공공선을 들먹였지만 임기 내내 그녀는 40년 인연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무능했으므로 수많은 문제들이 터져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책임을 고백한 적이 없다. 남의 탓으로만 돌렸다. 모든 문제는 국정을 발목 잡는 국회와 종북 불순세력에 의한 것이었다.

박근혜식 유체이탈화법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유대인을 향한 증오심을 부추겨 나찌즘을 강화했던 히틀러를 연상케 했다. 이 편가름의 정략은 박근혜 정권의 브랜드가 되다시피 해 블랙리스트라는 군부독재 시대의 악령을 일깨웠다.

더더구나 국민들이 가증스럽게 느꼈던 것은 그녀에게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304명의 꽃 같은 아이들이 수장돼가고 있을 때 그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골든 타임 7시간의 행적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날 미용시술을 했다는 의혹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인간의 양식을 먼저 갖췄어야 했다.

수많은 어린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의 죽음 등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도 그녀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는커녕 마음의 문조차 열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얼음 나라의 얼음 공주였다.

불통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는 늘 그녀를 따라다녔다. 소통은 고사하고 그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매스미디어가 국민 80% 탄핵찬성을 연일 쏟나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탄핵기각을 확실시 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수용하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거부하는, 그녀는 ‘확증 편향자’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지지자들에게만 둘러싸여 있었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주위에 광적인 지지자들만 남겼다. 지적하고 바른 말 하는 이들은 배신의 아이콘으로 몰아세우며 축출했다. 그래서 남은 지지자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 속의 주인공들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하루만 지나면 알게 될 8:0 탄핵 인용을 4:4 탄핵기각이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청와대를 떠날 때 돌아가야 할 삼성동 옛 사가의 보일러도 고치지 않았다.

국민의 이름으로 파면당한 대통령이 됐으면서도 그녀는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사가에 칩거하면서도 단골 미용사를 불러 들여 올림머리 손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자연인이 될 수 없는 여왕이고 공주였다. 21세기 백주에 우리는 그녀의 집 앞에서 옛 조선으로 되돌아간 기이한 전근대적 퍼포먼스를 목격해야 했다.

마마, 죄송합니다! 여인은 그렇게 엎드려 울었다. 우리는 그때야 알 수 있었다. 아, 우리는 지금 여왕을, 아니 루이 14세 정권의 안주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나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시종일관 국민의 근심거리였던 그녀의 여왕 코스프레가 이 정도에서 끝날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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