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세월호 인양 소식을 듣고 팽목항을 찾은 사람들이 방파제를 서성거리고 있다.팽목항 방파제 원형등대에 쓰여있는 “기억하라! 2014. 04. 16”“미수습자를 가족의 품으로” 염원이 적힌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미수습자 박영인 군이 신었던 축구화가 돌아오지 못한 주인을 플래카드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1,000일이 지나서야 세월호가 떠올랐다.

반잠수선에 쪽잠을 자듯 실린 세월호의 몰골은 무수한 상채기와 붉은 녹으로 처연하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처절했던, 그 심산의 세월을 ‘저도 알아요’ 라고 답하는 듯하다. 이제 뭍에서의 마지막 안식을 앞두고 있지만, 그 멸실의 과정조차 많은 국민들은 맘 편히 지켜볼 수가 없다. 살아남은 자들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망…“저희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피 쏟는 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수가 없어 팽목을 찾은 사람들

세월호가 물밖으로 8미터 몸을 내밀었다는 지난 24일 팽목에 갔다.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이 팽목 항 방파제를 덧없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얼굴들이 너무 어두워 누가 누구에게 말붙일 곁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렵게 용기를 내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는 방파제 끝 등대 벽에 적힌 ‘Remember 14.04.16'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광주에서 왔습니다.”

“여기서는 인양 작업을 볼 수 없는데요.”

“아, 저도 압니다.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요.”

뜨겁고도 습한 불기운 한 자락이 돌연 눈가로 쏠리며, 갑자기 그를 껴안고 싶었다. 슬픔과 고통의 공감은 늘 이렇게 지극하다. 내가 텔레비전 화면만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어 그저 이곳에 온 까닭이다. 그렇다. 방파제에서의 그 무언의 소요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묻고 답할 이유가 없는.

그곳에선, 방파제 난간에 빈틈없이 매달려 펄럭이는 노란 염원만이 언어였다. 갯바람에 몸을 뒤채는 노란 천들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미수습자를 가족 품으로’. 오랜 슬픔 끝에 마지막 숨을 쥐어짜듯 붙든 이 염원은 이제 뭍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너무도 길고 각박했던 세월이었다.

1073일째에서 1075일째, 인양은 3일에 끝났지만 그들은 3년을 기다려야 했다. 3년과 3일, 이 막막한 시간의 거리를 설명해줄 이들은 아직 이 나라에 없다. 인양방식 변경, 희귀한 소조기, 차가운 수온, 맹골 수도의 격랑…등등의 언급을 정부는 내놓고 있다. 그곳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여기는 국민은 없다. 그러므로 ‘인양성과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그 시간 텔레비전 뉴스의 자막은 덧없는 것이었다.

노란 리본이 만들어 낸 1,000만 촛불

세월호는 무도한 박근혜 권력의 야만성을 국민들로 하여금 각성케 했다.

무릇 사람됨의 근본인, 생명에 대한 외경이 없는 박 정권에 대해 국민들은 진즉부터 진저리를 쳤다. 304명, 꽃같은 아이들의 목숨이 수장돼가던 그 참혹한 절명의 시간에, 그녀의 7시간은 종적이 없었고, 그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올렸으며, 바다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후에야 나타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고 말했다.

국민들은 치를 떨었고 말을 잃었다.

이미 그녀는 상식 밖의 세상에 존재하는 기이한 대통령이었기에 상식의 세상을 살아가는 국민들은 희망을 접었다. 이 무심의 심연을 헤아릴 능력이 없는 그녀는 상식을 넘어선 해프닝을 멈추지 않았다. 미용시술을 멈추지 않았다.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아닌 최순실의 민원실장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억장이 무너진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지 않고 멸시했다. 불순분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동조자들에게 퍼뜨렸다. 영혼 없는 정치인‧관료‧21세기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을 마마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 사이코패스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세월호 유족들을 능멸했다.

단식 앞에서 피자먹기, 진상규명 요구에 시체장사 운운하며 모욕주기, 유족들의 장기농성을 경제위기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급기야는 과도한 예산 소요를 이유로 인양 불가론을 만들어내면서 세월호의 진실을 영원히 맹골수도의 차가운 해저에 묻으려 했다.

도를 넘어선 권력의 야만에 국민들은 가슴 속에 칼을 키웠다. 눈먼 백치 정권은 그 칼을 볼 수 없었다. 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호 또한 침몰을 시작한 것이다. 세월호 노란 리본은 결국 광화문 광장의 1,000만 촛불로 타올랐다. 그리고 끝내 촛불은 박근혜 정권을 태웠다.

세월호 넘어서지 않고 공화국의 미래는 없다

세월호가 인양되던 지난 25일 주말, 10만 촛불은 이렇게 외쳤다.

“박근혜가 내려오니 세월호가 떠올랐다.”

대통령 파면과 세월호 인양이라는 두 개의 팩트를 인과관계로 바라보는 광장의 주창에 대해 논리적 무모함을 지적하는 국민은 없다. 인양을 방해한 적잖은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청와대가 해양수산부에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무적 판단을 요청한 문건이 밝혀졌다. 우병우는 침몰 당시 상황이 담긴 교신의 기록을 지우려 했다. 박근혜 정권에 있어서 세월호 인양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지워야 할 역사였다.

팽목항 횟집에서 충혈된 눈으로 소주를 마시던 사람들도 이렇게 분노하고 있었다.

“3일에 끝날 일을 왜 3년 동안 하지 않았느냐?”

박근혜가 남긴 수치들은 국민과 그녀 사이의 막막한 불통을 상징한다.

3년과 3일, 세월호 골든타임 7시간의 실종과 검찰 조서기록 7시간 검토…등등 그 분열의 기록 또한 야만의 기억으로 오래도록 국민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인양 소식을 들으며 팽목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인양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그들의 가슴 속에서 세월호 의혹규명은 한걸음도 떼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 이제 그 야만의 시간에 대한 단죄가 이뤄져야 할 시기다. 304명의 아이들을 차가운 물속에 팽개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하고, 진실 규명과 인양을 방해한 음험한 세력들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 과실과 무능의 책임을 넘어서, 생명의 존엄을 짓밟은 그 짐승의 시간을 처단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문명의 역사를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선을 눈앞에 두고 정당의 주자들은 미래를 펼쳐 보이는 일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팽목항, 맹골수도의 심연을 눈을 감고 조용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세월호의 비극은 대한민국의 모든 적폐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야만의 상징’에 다름이 없음을. 세월호를 넘어서지 않고 우리는 결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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