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로선 달갑지 않지만 트럼프가 미국 4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내년 1월 20일부터 대통령직이 시작되려면 두 달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트럼프스톰(폭풍), 트럼프쇼크, 트럼프포비아, 트럼피즘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경제, 외교, 군사분야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미국 대선이 공화당 트럼프와 민주당 해리스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는 줄로 알았다. 박빙이기 때문에 개표만도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까놓고 보니 개표 당일에 트럼프와 공화당이 7개 경합주는 물론 상원·하원에서 다수당, 주지사·주의회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여기에 연방대법원도 9명의 대법관 가운데 6명이 보수 성향이어서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 유권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셈인데 우리는 이런 분위기를 까마득히 몰랐다. 하여 언론에 배신감까지 들었다. 우리나라가 민주사회가 됐다곤 하지만 세계의 정보에는 여전히 편향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우선주의·생활정치 공약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물가를 잡고, 미국으로 공장을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고, 불법이민을 철저히 막겠다는 ‘생활정치’를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미국민 입장에선 트럼프가 상대 후보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트럼프가 펼쳐나갈 정책은 ‘미국의 위대함을 다시 찾자(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것이다. 이 MAGA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구호였는데 40년 만에 다시 써먹은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긴급명령으로 불법입국자들을 쫓아내겠다고 했다. 45대 대통령이었던 1기(2017~2021년) 때와는 달리 백악관과 정부 요직을 40~50대의 충성파 젊은 층으로 지명하고 있다. 1기때 자신이 기용한 네오콘·군 장성 등 ‘어른들의 축’이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세계 경찰’ 역할을 축소하고, 국제 안보도 당사국들이 비용을 더 부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참여국들의 군사비가 GDP의 2%에 머무는 것은 세기의 도둑질이다. 3%로 올려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한국에도 연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2026년 1조 5,192억 원)을 9배인 13조 원(100억 달러)으로 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도 당사국 이해관계 조정보다는 현 상태에서의 무조건 휴전에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한 현 위치에서 1,500km의 국경선을 유럽 각국이 지키도록 하는 안이 트럼프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금인출기’로 보는 트럼프
트럼프는 “한국은 미국에 무임승차해 세계 10위 부자가 된 머니머신(Money Machine 현금인출기)”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1기때보다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흑자국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고, 올해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가 5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미국은 이런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고, 관세인상뿐만 아니라 무역역조 해소책으로 미국상품 수입 쿼터제 같은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남북문제이다. 그는 사업가적 협상에 능통해서 한국이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으면 안면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을 빼버리고(패싱하고) 북한 김정은과 남북문제를 논의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얼 준비해야 할까.

‘사업가적 협상’에 대응해야
첫째, 트럼프의 여러 카드를 상황별로 점검하고 플랜A, 플랜B, 플랜C를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는 한국을 압박하는 카드를 여러개 가지고 있다. 주한 미군의 철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우리기업이 미국에 첨단산업공장을 지을 때 바이든 정부가 주기로 한 보조금) 취소, 수입상품에 대한 관세율 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또 우리 방위산업 수출이 미국의 무기수출에 걸리적거리면 강하게 테클을 가할 수 있다. 트럼프에게는 동북아 안보상황보다 미국 우선주의(보호주의)가 더 중요하므로 ‘분담금’을 조건으로 또다시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사용할 것이다.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미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합리적이면서도 평화적인 지혜를 거국적으로 짜내야 한다.

‘젊은 인재들’이 상대해야
둘째, 대대적인 인적개편이다. 한미일의 캠프데이비드 합의는 2년만에 무용지물이 됐다. 트럼프 정책은 바이든 정책과 전혀 다를 것이므로 고정관념에 빠진 우리 정부와 대통령실 외교·안보 진용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돌려막기로도 안된다. 트럼프 친화적 새 인물들이어야 트럼프측도 협상의 상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실세들이 과거 정책을 생각지 않는 40~50대 신예들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동시대의 가치관과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 젊은 인재들이 상대하도록 해야 한다. 또 트럼프를 지지했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지명해 낭비적 정부조직을 개혁하고, 소령 출신 젊은 국방부장관으로 하여금 장군들을 인사혁신하겠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계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미국보다 더 파격적인, 기존체제를 뛰어넘는 미래지향적, 혁명적 방법으로 미국에 대응해야 한다.

K-콘텐츠 등 소비시장 구축을
셋째, 시장의 다변화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미국으로만 지나친 수출초과가 계속되다가는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 중국으로의 수출 증대도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므로 쉽지 않다. 결국은 시장의 확대밖에 방법이 없다. 일본경제가 버티는 이유는 1억3천만 명이라는 인구의 소비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5천만 인구로는 내수(內需)를 확대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소비시장을 1억5천만 명 이상으로 확대해 안정적인 시장을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하여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K-콘텐츠, 생활소비재, 교육, 성공신화까지 시장에서 꾸준히 팔리도록 해야 한다.

‘거국적 트럼프대응기구’ 구성
넷째, 지금이야말로 여-야, 정치-경제, 정부-민간분야의 거국적 협력이 필요한 때이다. 한국은 주식시장이 흔들리고, 국내·외 경제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을 제쳐두고 미-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주한미군 부담금 압박까지 가해진다면 외교·안보는 물론 대외신인도가 추락한다. 따라서 거국적으로 지혜를 짜내야 한다. 야당은 다수당인데다 과거 두 차례 집권한 경험이 있고, 앞으로 집권 기회를 가지고 있는 정당이다. 따라서 정부는 야당을 ‘반국가적 세력’으로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먼저 접근해 협조를 구해야 한다. 또 트럼프 1기를 겪었던 문재인 정권 관계자들의 조언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그때의 경험이 뒷받침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학습효과도 없이 현 정부가 조급하게 대미협상에 나섰다간 뒤통수만 맞거나 패싱 당할 수 있다.

‘바보 국민’ 만들면 안돼
다섯째, 언론도 정신차려야 한다. 이번처럼 미국의 주류 언론에만 의존해 보도함으로써 국민을 황당하게 만드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외신만 보도할 게 아니라, 부정적인 보도도 소상히 알려 국민들이 국제사회의 현실을 냉철히 분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안보를 상당부분 미국에, 경제를 국제경제에 의존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언론이 우리 국민에게 바보 같은 눈과 귀를 갖도록 하는 것은 반국가적인 행위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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