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미생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한날 하필이면 큰 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여인은 오지 않았고 물은 점점 불어올라 미생의 무릎까지 차올라왔다. 그럼에도 미생은 굳게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결국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생명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의 지조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리석고 융통성 없는 태도를 경계했다. 이 고사가 바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상반된 교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작은 약속이지만 끝까지 지키려는 성실(誠實)함과 신의(信義)의 가치다. 또 하나는 약속의 의미와 상황에 따라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채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희생한 우직(愚直)함의 어리석음이다. 시대에 따라 보는 눈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本質)은 같다. 지켜야할 것은 약속이지만, 지혜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신뢰(信賴)와 약속이 점점 가벼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로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위기 앞에서 책임은 미루고 약속은 쉽게 깨진다. 정치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선거 뒤에는 잊고, 기업은 고객과의 신뢰를 비용으로 환산하며 인간관계조차 조건과 효율에 따라 흔들린다. 그런 가운데 미생처럼 작은 약속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은 오히려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런 미생이 어리석기만 했을까? 미생의 우직함은 우리가 잊고 사는 어떤 본질을 상기 시킨다. 약속은 어떤 일정한 공유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뿌리이며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원초적인 끈이다.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큰일 앞에서도 신뢰받기 어렵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 그것이 바로 인격의 무게다. 그런 면에서 미생은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신의의 화신 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미생의 죽음에서 균형감각의 중요성도 배워야 한다. 신의를 지켜야하되 그 방식은 지혜로워야 한다. 강물이 넘치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고집은 결과적으로 약속의 가치를 훼손(毁損)하기도 한다. 약속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통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이다. 사람의 생명 관계의 진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판단 할 줄 알아야 한다. 

우직한 미생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약속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은 어떤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진정한 인격은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데 있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약속을 귀하게 여기고 때로는 형식을 넘어서 본질을 지켜 낼 수 있는 분별력과 용기 그것이 함께할 때 신의는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작은 약속하나를 위해 큰 생명을 잃은 사람 미생. 이제는 그를 조롱하기 보다는 그의 정신을 지혜롭게 계승할 시대다. 신의는 결코 옛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매일 새롭게 선택해야할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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