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 4일 파면되자마자 21대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잡히면서 지난 3년간을 반성할 틈도 없이 대선정국으로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단호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탄핵반대를 외치는 ‘여진(餘震)’이 남아있다. 내란죄 역시 우두머리는 반성 없이 자유의 몸이 돼 활보하는 반면 그의 명령을 따랐던 군인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대행정부’ 역시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의심받을 만한 모호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무역·관세·방위비에 이르는 트럼프 폭풍이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으나 윤석열의 엉뚱한 짓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윤석열 탄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치적 불확실성 지수가 예전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예측불허의 정치환경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두 달 뒤에 안정된 정국(政局)을 이룰 것인가가 당면 과제가 됐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2주일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내란사태’를 냉철히 되돌아보면 지난 4개월 122일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철저히 국민을 배반(헌재 판결문)한 시간이었다. 또 윤석열의 법조인답지 않은 변명의 연속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나선 시민들의 극적인 장면들이 숨 가쁘게 흘러갔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가 앞으로 올바로 나아가려면 이 장면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기회주의 국힘과 ‘대행정부’     
국민은 수많은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의 기회주의적 행동들을 지켜보았다. 대통령의 ‘대행’들은 최소한의 행정만 유지하겠다는 핑계로 법적 절차를 마친 헌법재판관의 임명을 지루하게 미루는가 하면,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서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발동해 파면된 자의 전철(前轍)을 밟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권한대행의 ‘권한’도 아닌 새 헌법재판관 지명을 전격 단행하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윤석열의 명령으로 경찰과 군대가 가로막는 바람에 국회 계엄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럼데도 “탄핵은 안된다”는 주장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모순된 입장을 보였다. 또 한동훈 당 대표가 탄핵에 찬성하자 전당대회에서 투표로 당선된 그를 사실상 쫓아냈다. 과거 이준석을 쫓아낸 것과 같은 일을 되풀이한 것이다. 대통령이 파면되자 이번에는 “개헌을 하자”면서 후유증을 희석시켰다. 1호 당원인 대통령 2명이 ‘연속탄핵’(유승민 발언)당한 정당이 되었는데도 혁신하지 못하자 오세훈 같은 유력한 정치인이 ‘국민의힘은 올바른 보수의 길을 가야한다’며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했고, 유승민 역시 당내 후보 경선에 불참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이 언제나 국민이 기대하는 바람직한 ‘보수정당’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박근혜 때보다 ‘억지’ 더 늘어
윤석열의 변호인단 역시 “계엄이 아니라 계몽”이었다고 해 웃음거리가 됐다. 그들은 검찰이 ‘구속시간’이 만료된 상태에서 공소를 제기했다는 법리적 논쟁을 벌여 윤석열을 풀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법률적 절차 잘못(여기에 대해서도 윤석열에게만 ‘구속일’을 적용해 온 관례를 깨야 하느냐는 논란이 많았지만)으로 풀려나 자유를 누린 반면 명령에 따랐던 많은 장군은 내란 우두머리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단순히 법률적인 절차 문제를 놓고 내란 우두머리를 석방한 판사, 이를 옳은 법률적용으로 여긴 변호사들, 사안의 중대성을 외면하고 즉시항고를 포기한 채 하루 만에 석방 지휘를 내린 검찰총장 등 여러 법조인들이 보여준 행태들은 앞으로 우리가 정리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시민이 민주주의 지켜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준 주역은 국민이었다. 국회로 진입하는 군인들을 맨 먼저 막아선 것은 시민들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동하는 장갑차 앞에 목숨을 걸고 드러누운 시민들도 있었다. 45년 전 전두환 쿠데타가 가르쳐준 학습효과였다. 이 덕분에 국회가 계엄의 효력을 150분 만에 중단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후 벌어졌을 검거선풍, 보도검열 및 언론의 왜곡보도, 암흑으로 뒤덮인 동토(凍土)의 시대를 얼마나 보냈어야 할지 모른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국회가 찬성 204표로 아슬아슬하게 탄핵할 수 있었던 것(지난해 12월 14일)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을 외쳐댄 젊은 20~30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함께 하지는 못했으나 이들을 응원하느라 선결재로 음식과 음료를 지원한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도 있었다. 국민들이 ‘내란불면증’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밤을 새워가며 헌법재판관들에게 응원을 보낸 국민들도 빼놓을 수 없는 영웅들이었다. 대통령의 위헌적 지시를 따랐다가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부하들에게는 죄가 없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자수서를 쓴 특전사령관이 나타난 것도 5·18 교훈 덕분이었다. 결국 전국 곳곳에 ‘깨어있는 시민’이 있었기에 나라를 구한 것이다. 

왜곡보도…언론책임도 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필자는 위헌·위법의 ‘내란’이었므로 쉽게 탄핵-파면으로 결론 날 줄 알았다.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탄핵심판 92일째인 3월 15일 심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선고일 발표가 미뤄지자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 사이에서는 윤석열이 석방되자 더욱 열을 올려 “기각, 또는 각하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친윤 유튜버들이 헌법재판관들의 성향을 들먹이며 밑도 끝도 없이 5대3, 4대4로 기각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서자 일부 언론들은 이를 받아쓰면서 혼란을 가중했다. 황색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필자에게 결과를 문의해 온 지인들에게 ‘만장일치로 파면된다’고 자신있게 대답해 주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솔직히 ‘비상식적인 내란사태’여서 ‘비상식적인 판결’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뒤따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위헌’을 명확히 설명하고,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을 결정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지난 4개월 동안 벌어졌던 ‘내란사태’는 우리에게 분명한 과제를 남겼다. 그 첫 번째가 21대 대통령을 잘 뽑는 일이다. 지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아서 파면됐다. 타협과 조화보다는 독선과 불통, 인성부재(人性不在)에다 국회활동을 금지해 헌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여야 간에 타협을 통해 안정된 정치환경을 조속히 구축하고, 경제안정과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 타결, 양극화된 국민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정당민주화·대타협·개헌 ‘과제’ 해결해야
그러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본다.  첫째, 민주화된 정당에서 올바로 정치를 경험해 온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국민의힘은 당의 혁신을 가져오지 못했다. 지난 대선 때 당 바깥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치초보’(윤석열)를 모셔 와 당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인물에게 충고도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다가 “폐족”(김기현 발언)이 되고 말았다. 21대 대선에서도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대통령에 출마할 후보자는 정치안정을 위한 세밀한 계획을 제시하고, 지키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윤석열도 취임 당시에 법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를 하고 국회와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씨 부부의 선거개입 의혹, 친인척·측근사건에 대한 조사활동 제동 의혹 등이 제기됐다. 이번 후보자들은 자기자신에 대한 책벌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국민에게 정치안정에 대한 신뢰를 주어야 한다.

셋째, 헌법개정에 대한 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국민은 87체제라는 낡은 헌법에서 벗어나 보다 민주적이고 분권적인 체제의 7공화국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후보마다 ‘개헌’을 하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실천하지 못한 시간이 벌써 15년째이다. 하여 필자는 권력구조만이라도 우선 개헌을 하여 대선을 치르자는 주장을 했었다. 그러나 윤석열 파면 뒤 선거를 공정히 관리해야 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설이 나도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내란정국’ 이 계속돼 이 주장을 철회했다. 내란사태 청산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개헌공약(空約)이 되풀이되어선 영원히 낡은 87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후보들은 각자 개헌로드맵을 제시하고 지키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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