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에서 열린 2024~2025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알 힐랄과의 8강전에서 광주FC는 0-7로 완패했다. 

그런데도 ‘결과는 아쉽지만 이정효(50) 감독과 광주FC는 박수받아 마땅한 팀이었다’ ‘20배 몸값 차이에 막혔지만 용감하게 싸운 이정효 축구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히려 격려로 넘쳐났다. 이정효 감독이 이끄는 광주FC에 대해 ‘믿음’과 ‘기대’, ‘역동성’, ‘공격축구’ 이미지가 깊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한국의 국가대표팀이 4강까지 올라간 마당에 아시아 축구리그 8강에서 패배한 뉴스는 관심거리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성적은 한국 지역연고 시민구단의 희망이자, 국가대표팀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계란의 바위치기’에 도전한 용기
경기가 열리기 전 전문가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고 예측했다. 전력차가 컸기 때문이었지만, 이정효 감독이 이끌고 있기 때문에 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알 힐랄은 과거 ACL에 9번 결승에 진출했고, 4번 우승을 한 팀이다. 사우디 출신 선수는 단 2명뿐이고, 9명이 유럽의 빅리그에서 활약했던 스타 선수들이 모여있다. 선수들의 가치도 1억8,000만 유로(2,950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비해 광주FC는 창단 이래 처음 ACL 8강에 올랐고, 스타플레이어도 없다. 또 선수단 가치도 860만 유로(약 141억 원)에 불과했다. 알 힐랄팀을 이끄는 포르투갈 출신 조르제 제수스(71) 감독의 연봉도 1,220만 달러(약 177억 원)로 이정효 감독의 연봉 7억 원보다 25배 많았다.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광주FC는 팀의 장기인 공격축구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전반전에 3골, 후반전에 4골을 허용하며 처참하게 깨졌다. 

2010년 ‘광주·전남시민구단’  출범
광주FC는 2010년 12월 시민프로축구단으로 K리그 16번째 구단으로 출범했다. 주축은 금호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이었다. 이듬해인 2011년 16개 구단 중 1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고, 광주·전남시민구단이 재정에 쪼들리다 보니 이후 K리그 1부와 2부를 오르내리는 기복이 심한 성적을 보였다. 

2022년 K리그2에서 ‘9관왕’ 
그러다가 2022년 이정효가 팀의 감독을 맡으면서 신기록의 행진이 시작됐다. 첫 해인 2022년, 단번에 K리그2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K리그2 최다승- 최다승점(25승-86점), 최단기간 우승(4경기), K리그2 홈 최다연승(10연승) 신기록을 세웠다. 또 이정효 감독은 K리그2 감독상, 안영규과 엄지성은 각각 MVP와 영플레이어상, K리그2 베스트11에 6명을 배출하는 성적까지 내 한꺼번에 9관왕을 차지했다. 첫 번째 기적이었다. 

2023년엔 K리그1에서 ‘3위’
2023년, 광주FC가 K리그1으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기업구단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강등이 유력한 팀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제치고 K리그1 3위를 차지해 파란을 일으켰다. 두 번째 기적이었다. 

2024년에는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로 방향을 돌렸다. 2024~2025시즌 ACL은 모두 24개 팀이 동·서아시아 그룹으로 나누어 리그전을 치른 뒤, 양 그룹에서 상위 8개 팀이 다시 토너먼트로 각 4팀을 선발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8개 팀이 사우디에서 토너먼트로 승자를 겨루는 게임이다. 광주FC는 2023년 말 국내 3위로 이미 ACL에 진출할 16개 팀에 들었다. 다음 목표는 동아시아그룹 8개 팀 가운데서 4강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2024년 시민구단 최초 ‘ACL 8강’ 
2024년 9월, 일본 J리그 강호이자 지난 시즌 ACL과 J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명문 요코하마 마리노스를 광주로 불러들여 1차전에서 7대3으로 꺾었다. 이 시기에 포항은 중국 상하이에게, 울산은 일본 가와사키에게 패했다. 광주FC는 국제대회에 처음 출전하고서도 대승을 거두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올 3월 1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고베와의 2차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광주FC는 3대0으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그룹 1순위로, 한국 팀으론 유일하게 ACL 8강에 오르게 됐다. 세 번째 기적이었다.  

‘코리안 모리뉴’ 이정효 
광주FC가 해마다 기적을 쌓아 올라가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베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수훈갑(首勳甲)은 당연히 이정효 감독이었다. 스포츠 전문 매체인 ESPN은 이 감독을 ‘코리안 모리뉴’라고 소개했다. 모리뉴는 포르투갈 출신으로 최고 축구 감독 중 1명으로 특출한 선수관리와 거친 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인물이다. 이 감독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10년간 무명의 프로선수 생활을 보냈다. 이를테면 흙수저였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다가 감독으로서는 처음 광주FC를 맡게 됐다. 그는 4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과감한 선수 기용, 변화무쌍한 공격형 전술로 상대진영을 혼란에 빠트리는 등 뛰어난 팀관리와 리더십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번은 FC서울과 경기에서 패한 뒤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게 졌다는 게 분하다”라고 말해 막말 논란에 휩쓸리기도 했다. 한 언론은 이 감독의 이런 능력과 쇼맨십이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능력과 성격 때문에 ‘기적의 사나이’‘모난 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구단주와 응원단도 숨은 공로자
2022년 K리그2 우승, 2023년 K리그1 3위, 2024년 시민구단 최초 ACL 8강 진출. 해마다 기적을 만들어 온 광주FC의 성공에는 구단과 끈끈한 팬들의 노력도 한몫을 했다. 2023년 11월 구단을 맡은 노동일 대표이사는 “광주FC가 아시아무대 등극을 위해 자양분 역할 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호응하듯 이듬해 팀은 ACL 16강에 올랐다. 팀의 성적이 일취월장하자 홈 팬들의 응원도 뜨거워졌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광주축구전용구장에는 5,786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원정석을 제외하고 3면에 관중이 꽉 들어찼고, FC서울과의 개막전에도 6,795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광주, 야구와 축구로  ‘쌍두마차’시대 열어
2024년은 광주로서 뜻깊은 해였다. 기아 타이거스가 우승하고, 광주FC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야구만이 유일하게 광주에서 독주하던 시대를 끝내고 축구도 함께 가는 ‘쌍두마차’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한국 축구는 2002년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오른 뒤 오랫동안 여기에 견줄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뜨거운 열기를 찾아오려면 구단을 중심으로 기량을 강화하고 국제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단별, 지역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 광주FC는 열악한 변방의 시민구단임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선수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국제무대에서 기업구단과 견주어서 손색없는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변방의 시민구단에게도 힘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광주FC는 평균 연봉 1억5,000만 원(2022시즌 기준)으로 K리그1 12개 구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제 기적을 이룬 그들에게도 성과에 걸맞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기적을 만드는 팀’, 그러나 ‘가난한 팀’ 광주FC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미는 기적은 언제나 찾아올까. 

영광군민신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