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그 파면조차 너무 때늦은 결과라며 내심 아쉬워했다. 세월호 사태 이후 단 한 번도 대통령으로서의 그녀의 존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하루라도 빨리 정권이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녀가 구속되고 법리 다툼을 벌이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라도 끝나게 된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고. 막장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에서 만일 대통령 직을 유지했다면 또 얼마나 극악한 짓을 벌였을까 싶은 두려움이 치밀었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분노 유발 사례 속에서도 국민의 마음속에 가증스러움을 안긴 가장 핵심적인 동기는 다름 아닌 그녀의 거짓말이다.

하녀 같은 위치에서 자신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던 최순실은 지금 그녀와의 경제공동체이자 뇌물죄 공범의 혐의로 교도소에 갇혀있다. 블랙리스트는 없었다지만 김기춘과 조윤선 또한 오랏줄을 받았다. 국민복리와 나라를 위해서 일했을 뿐이라는 그녀의 언급은 안종범의 수첩을 통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초기에 검찰 조사에 혹은 특검의 조사에까지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그녀의 대국민 담화문 또한 헌신짝처럼 팽개쳐졌다. 세월호 골든 타임에 할 일을 다 했다고 공언했지만 그날 청와대 7시간의 행적을 그녀는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낯 빛 한번 변하지 않고 최근에 늘어놓은 거짓말이 이 정도이니 공약을 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지난 일 따위야 거론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어투 중에 재밌는 게 눈에 띈다. 아, 정말? 시내를 걷다 보면 핸드폰을 든 청소년들의 대화 속에서 숱하게 들리는 얘기다. 영어식 표기로는 '리얼리(really)?' 인데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 ‘그게 정말이냐’고 묻는 어법이 쉽게 쓸 수 있는 경우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청소년들의 그러한 어법 또한 경이로운 일, 혹은 뜻밖의 소식을 접했을 때 쓰는 관행 어다. 하지만 혹여 ‘거짓말하는 사회’ 가 낳은 풍속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대통령씩이나 된 사람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거짓말해선 안 된다’는 미덕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박제가 된 가치가 아닌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대선 후보들의 사자후들이 연일 매스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듣고는 있지만 과연 지켜질 일들인지 의심부터 생겨나는 게 사실이다. 어떤 후보는 고작 며칠 사이에 말들이 바뀌는 것을 보면 벌써부터 신뢰가 무너진다. 선거 때만 되면 다 하는 거짓말이니 나라고 못할 이유 있느냐고 배짱을 부리는 것도 같다.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유권자들의 각성도 필요해 보인다. 국민 앞에 했던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어기는 정치인들을 그러려니 하며 두고 보는 유권자의 안일함이 결국 거짓말 정치에 자양분을 대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우리 사회에 수많은 의미를 새기고 있지만, 국민 앞에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교훈 또한 엄중하다. 아무리 출중한 공약도 지켜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의 지난 행적을 통해 국민 앞에 쏟아놓은 말들에 책임을 지는, 거짓말을 두려워하는 품성의 정치인을 고르는 일이 공약의 내용을 살피는 일의 전 단계가 돼야 한다.

영광군민신문 박호재-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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