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은 유난히 더디 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겨울이 너무 지겨웠기 때문인 듯합니다. 예년에 비해 그다지 춥지도, 눈이 많이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겨우내 박근혜와 간신들의 국정농단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정말 지겨운 세월이었습니다. 반성 없는 박근혜의 무지와 부도덕성을 마주하기가 지겨웠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지키기에 나선 사람들의 작태를 보는 것도 고문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한 나라, 국민들은 아마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경칭생략)보다 국민과 나라가 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어서 빨리 어두운 시간들이 지나가길 학수고대했을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국정농단 사태는 일단 마무리 됐습니다. 이제 그들에 대한 법의 심판을 지켜보는 것만 남았습니다.

봄은 금방 올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겨울의 껍질은 유난히 두텁게 느껴졌습니다. 봄이다 싶어 한 꺼풀 벗어젖히려 하면 살얼음이 내렸습니다. 반복하다 감기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꽃들이 피었겠다 싶어 찾아보면 아직 이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주. 이제야 봄은 왔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있습니다. 꽃들이 벌을 유혹하는 광경이 유난히 반가운 봄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좋습니다.

봄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봄이 되면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산하를 둘러보는 것도 인생의 맛이며 멋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가슴 한 곳에 겨울의 두터운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가슴이 시립니다. 우리나라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싸드’ 포대를 실은 미군 수송기를 보아야 했습니다.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위협하는 ‘싸드’ 배치가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안보를 위해 ‘싸드’배치가 불가피하다 해도 이런 방식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국민에게 미리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이 모두 생략됐습니다.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싸드 배치가 발표됐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보복이 시작됐습니다. 중국 진출 기업과 한류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명동과 동대문 시장, 제주도에 넘치던 중국 관광객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정치에 이어 경제도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긴 박근혜 정부 시절에 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 사라진 대통령의 7 시간과 국정농단이 있었다는 것만 분명합니다. ‘안보’를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은 정권이면서 북한의 핵 도발에는 씨알도 안 먹힐 ‘응징’만을 외친 공허한 목소리만 기억합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한반도 재단에 들어갔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사라지는 세월입니다. 제 가슴속은 다시 엄동설한을 맞고 있습니다. 강대국에 끼여 엄혹한 세월을 맞는 조국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빨리 제대로 된 정부와 국민이 “이게 나라다”를 만방에 크게 알리는, 화사한 봄날 같은 세월을 맞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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