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엑시지 스포츠 380은 시승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 차였다. 엑시지의 ‘끝판왕’은 정교하고 섬세한 개선, 과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무게 감량으로 나를 포함한 많은 애호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V6 엔진을 얹은 오리지널 엑시지 S는 언제나 매력적인 자동차였고, 그보다 더 가벼운 엑시지 스포츠 350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둘보다 더 가볍고 빠르게 진화한 엑시지 스포츠 380은 당연히 가장 뛰어나리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경량화에 대한 로터스의 강한 의지는 아주 작은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테일램프도 4개에서 2개로 줄였을 정도다. 안쪽에는 자그마한 후진등을 박아 넣었다. 이것으로 덜어낸 무게는 300g에 불과했지만 마니아에게는 이런 부분도 크나큰 매력이다. 그밖에도 리튬이온 배터리를 달아 10.3kg을 줄였고, 탄소섬유 시트로 6kg을 덜어냈다. 무게를 줄이고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해 유리섬유로 만든 보디 패널은 탄소섬유로 바꿨다. 휠을 바꿔서 1개에 2.5kg씩 줄였고, 900g을 줄이려고 뒤창 유리는 폴리카보네이트로 바꿨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380은 350보다 30kg 넘게 가볍다. 티타늄 배기파이프, 탄소섬유 실 커버 옵션을 고르면 45kg까지 가벼워진다. 로터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공기역학 성능을 개선하고, 새로운 연료펌프, 더 큰 연료탱크, 성능을 강화한 변속기 오일쿨러를 달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무게 감량 효과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이렇게 15kg을 더 덜어낸 결과 몸무게는 1110kg까지 줄었다. 참고로 오리지널 엑시지 S는 1176kg이다.

엑시지 스포츠 380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 바로 드라이빙 그 자체다. 그런데 막상 차를 직접 마주하면 곧바로 운전을 시작하기 어렵다. 물론 몸을 한껏 움츠려 작은 몸을 통과해야 하는 절차가 따르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주 멋진 디자인이 한순간 시선을 붙들기 때문이다. 앞부터 뒤까지 여러 가지 작은 공기역학 요소로 가득한 아담한 슈퍼카는 그저 함께하기만 해도 벅찬 감동을 준다. 공기역학 요소들로 인해 다운포스가 88kg에서 140kg까지 올랐다. 

힘겹게 운전석에 앉은 뒤에도 콕핏을 구경하고 앞창 유리 너머 보이는 전경을 감상하느라 주행을 시작하지 못한다. 실내는 조금 좁지만 간결하고, 직관적이며, 환상적이다. 바느질로 멋을 낸 가죽과 알칸타라,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깔끔한 장치, 기어 링크가 훤히 드러난 알루미늄 패널 등 심미적인 부분과 손맛을 모두 이뤄냈다. 눈으로 보나 손으로 만지나 완벽한 구성이다.

소리도 만족스럽다. 토요타가 만든 V6 3.5L 엔진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티타늄 배기 시스템이 내는 기분 좋은 소리는 캠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41.8kg·m의 V6 엔진은 이만큼 가벼운 차에는 차고 넘친다. 정지 상태에서 3.5초 만에 시속 100km를 찍고 최고시속은 286km다. 직선주로에서는 이보다 더 빠른 기록을 내기도 한다. 영국 헤텔에 위치한 로터스 테스트 트랙에서는 랩타임 1분26초05를 기록했는데, 이는 일반도로용 3-일레븐의 기록과 단 1.5초 차이다. 실로 놀라운 기록이다. 

이런 굉장한 수치들 때문에 스포츠 380이 타협을 모르는 트랙용 머신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1단 기어를 넣고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런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진다. 기어는 매끄럽게 물리고 엔진은 망설이는 기색 없이 힘차게 돌아간다. 넘치는 토크를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다.

시승 장소인 요크셔데일스 국립공원에는 비가 내렸다. 다행히 기온은 섭씨 8도라 기본 타이어인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컵 2에 적합한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노면이 흠뻑 젖고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어서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 보였다. 가볍고 빠르고 회두성이 좋은 미드십 스포츠카를 시승하기에는 분명 좋지 않은 날씨였다. 빗물을 튀기며 달리는 내 팔과 허리와 어깨가 긴장감으로 굳어갔다. 

엑시지 스포츠 380이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비에 젖은 낙엽이 도로에 붙어 있는 곳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흠잡을 데 없이 달렸다. 자세제어장치가 나서기도 전에 중심을 잡는 모습이 굉장히 믿음직했다. 속도를 조금씩 올려도 스포츠 380은 안정적이고 완벽한 주행감을 선사했다.

스포츠 380은 높지 않은 속도에서도 운전하는 즐거움이 대단했다. 기분 좋은 엔진 소리, 운전 환경, 차와 하나로 연결된 느낌에 굉장히 즐거웠다. 운전석에 앉아 있기만 해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날이 바짝 선 듯 하면서도 잘 단련된 느낌이었다. 스포츠 380을 몰고 간 곳은 영국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도로다. 나는 섬세하면서도 민첩하게 반응하는 스포츠 380에 만족했다. 바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차들도 있다. 반면 스포츠 380은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운전자도 함께 경험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물웅덩이를 지날 때 물과 모래가 휠 아치를 두드리는 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스포츠 380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 물론 누구나 생각이 같지는 않다. 어떤 이는 카펫 위를 달리는 듯한 정숙성을 원할 수도 있다. 내 기준에는 380이 보여주는 모습이 진정한 드라이빙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날이 갠다는 일기예보가 빗나간 것 같았다. 그때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걷히고 반가운 햇살이 비췄다. 지평선 쪽으로 도로가 점점 밝아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마른 도로에서 스포츠 380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서둘러 길을 나섰다.

높은 단수에서 토크를 다루는 것도 충분히 즐겁지만, 낮은 단수에서 스로틀을 여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스포츠 380은 그 순간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부드럽고 활기찬 모습은 사라지고, 엔진 회전 한계에 가까울수록 흉포한 맹수처럼 변했다. 코너를 완벽하게 돌아간 다음에 곧장 다른 코너까지 쏘는 기분은 정말이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변속감은 최근에 나온 로터스 중에 가장 뛰어나다. 기계장치를 겉으로 드러낸 멋진 기어 덕분인지, 로터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인지 확신할 수 없다. 아무튼 변속은 빠르고 깔끔하고 정확했다. 위·아래·왼쪽·오른쪽으로 원하는 만큼 변속해보라고 부추기는 것만 같았다. 

단점 하나를 꼽자면, 엔진은 세고 몸은 가벼워서 거의 변속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변속기를 가지고 노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 나도 모르게 변속을 위한 변속을 하게 된다. 페달 간격은 힐앤드토를 하며 다운시프트하기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에보라 스포츠 410처럼 스로틀 반응이 부족한 데드존이 있어서 변속할 때 엔진 회전수를 맞추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브레이크는 3-일레븐의 브레이크를 가져온 만큼 나무랄 데 없다. 페달은 견고하고 반응은 부드러우며 저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으면 즉시 전해지는 압도적인 힘에 자신감을 얻게 된다. 까다로운 조건에서도 ABS의 한계점까지 영리하게 작동한다. 일반도로용 차 중에서 이만큼 뛰어난 브레이크를 가진 차는 많지 않다. 

스포츠 380이 특별한 부분은 장점 하나하나가 조화를 이루면서 차를 완성한다는 점이다. 스포츠 380이 높은 수준의 접지력과 트랙션을 섬세한 주행감과 섞어내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또 이러한 성능을 일반도로에서 펼쳐 보일 수 있다는 점 역시 매우 훌륭하다. 

달리면 달릴수록 스포츠 380이 선사하는 즐거움 속에 점점 빠져들었다.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스포츠 380보다 빨리 주파하는 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미드십 스포츠카로 까다로운 도로를 달릴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이나 긴장감과는 달랐다. 눈앞에 펼쳐진 도로를 보며 앞으로 달릴 코스를 예상했다. 미끄러지듯 빠르게 코너와 코너를 누볐다. 이 정도 속도라면 몸은 기계적으로 움직일지라도 정신은 차분하기가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던 둔덕이 느닷없이 튀어나오고 술래잡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구불거리는 까다로운 길이 계속됐다. 스포츠 380의 안정성과 균형에 의지해 운전했다. 다음 코너에서 강력한 AP 브레이크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2단과 3단 기어를 쥐어짜내며 달리면서 주행을 만끽했다. 스포츠 380은 강렬함과 중독성, 진정한 운전의 즐거움을 갖춘 자동차다. 

주행 모드는 노멀·스포츠·레이스, 그리고 트랙션 컨트롤과 자세제어장치를 완전히 끌 수 있는 레이스 플러스 모드가 있다. 비가 내리는 최악의 조건에서 노멀 모드와 스포츠 모드로 달려보니, 운전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시스템이 개입해 안정성을 확보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레이스 모드는 운전자의 역량을 발휘하게 하고, 접지력과 트랙션의 한계를 넘어 약간 슬립과 슬라이드를 느낄 수 있다. 낮은 둔덕을 넘으며 가속페달을 밟자 엔진이 빠르게 돌아가며 뒤쪽이 흔들리는 듯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직 차를 제어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다.

스포츠 380은 가끔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LSD)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끔 한다. 대부분 레이스 모드나 레이스 플러스 모드로 좁은 오르막 코너를 달릴 때 그렇다. 젖은 노면이라는 악조건이지만 코너 안쪽 뒷바퀴가 토크를 이기지 못하고 휠 스핀을 내는 모습은 이 차의 성능과 완성도를 생각하면 의아한 부분이다. 물론 LSD를 달면 5kg가량 무거워지고 젖은 노면에서 차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 가지만 고집해도 좋지 않다. 로터스도 LSD를 달면 랩타임이 극적으로 단축된다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에보라 스포츠 410이 LSD를 달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주제다. 휠 스핀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포츠 380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스포츠 380은 포르쉐 911이나 카이맨 GT4처럼 매일 타고 다닐 만한 차는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과 가장 가까운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스포츠 380을 구입하고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로터스 팬은 스포츠 380을 선택할 것이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성능을 갖춘 매력적인 자동차여서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Lotus Exige Sport 380 
엔진 : V6, 3456cc, 슈퍼차저
최고출력 : 375마력/6700rpm
최대토크 : 41.8kg·m/5000rpm
변속기 : 6단 수동, RWD
서스펜션 앞/뒤 : 더블 위시본
휠 앞/뒤 : 7.5×18/10×18인치
타이어 앞/뒤 : 215/45ZR17, 265/35ZR18
무게 : 1110kg
무게당 마력 : 343마력/톤 
0→시속 97km : 3.5초
최고시속 : 286km
영국 가격 : 6만7900파운드(1억100만원)

evo 코리아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