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변태 달리기

: 동심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

군대 이등병 때의 일이다. 말년 병장이 뜬금없이 내 손을 잡더니 뛰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었고 아무 이유도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다니며 달리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왠지 모를 웃음이 계속 터져 나오며 묘한 쾌감(?) 마저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이유 없이 손을 잡고 전력질주를 하는 그 선임도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같이 달리며 좋아했던 나도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요즘에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아내와 길을 걷다가 장난을 치고 싶을 때면 그때처럼 갑자기 아내 손을 잡고 냅다 달린다. 아내도 이 뜬금없는 상황에 황당해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넘어질까 무서워 비명을 지르며 달린다. 그 묘한 스릴과 쾌감은 나만 느꼈던 게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둘 다 변태이던지.

과연 우리 부부만 변태일까? 이것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용해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갈 때면 내려올 때 힘이 떨어진 아이들은 업어 달라고 칭얼댄다. 이때 ‘손잡고 무작정 뛰기(일명 변태 달리기)’는 의외로 효과가 있다. 산 내리막을 변태 달리기로 내려오면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너무나도 즐거워한다.

그렇게 한바탕 뛰고 나면 다시 생기가 돈다. 재미를 붙인 아이들은 심지어 또 하자고 조르기까지 한다. 그럴 땐 이제는 힘들어서 안 된다고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걷는 척하다가 갑자기 또 달린다. 변태 달리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불시에 달리는 것이 포인트다. 그렇게 몇 번만 하면 아주 즐겁고 빠르게 산에서 내려올 수 있다. 단, 아이의 다리가 풀려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손을 꽉 잡고 뛰는 게 중요하다. 혹시라도 아이가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내와 아이의 모든 원망을 다 들으며 미친놈 취급을 바을 수 있다.

아이들은 주로 뛰어다닌다. 집에서도 뛰고, 밖에서도 뛴다. 걸어도 될 상황에서도 뛴다. 반면 어른들은 잘 달리지 않는다. 어른들은 뛰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뛰지 말고 걸어 다니라고 잔소리하기 바쁘다. 운동을 하거나 길을 건널 때처럼 어떤 목적이 있거나 꼭 뛰어야 할 상황이 아니면 웬만해선 뛰지 않는다(차가 지나다녀도 유유히 걷는 어른들이 참 많다. 믿고 사는 사회~).

아이들은 왜 뛰어다니는 걸까? 이는 즐거운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특성 때문이다. 또 아이들은 뛰면서 에너지를 최대한 발산함으로써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고 뼈와 근육에 적절한 자극을 주게 되어 근력이 발달하며 성장한다. 건강한 성장을 위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 이유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뛰어보는 것. 어쩌면 그 변태 같은 이상한 행동이 혹시 동심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아닐까?

Episode 2 <미안하다, 사랑한다>

윤이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아침일찍 일어난 윤이와 나. 아내와 준이는 아직도 꿈나라. 나랑 윤이 둘이서 나란히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우유에 타 먹는 중이었다. 마침 그때 간밤에 누적 숙성된 방귀 큰 놈이 나오려 했다.

식사 중에 미안하다만···

“뿡~”

생각보다 컷다. 미안한 마음에 옆에서 먹고 있던 윤이를 봤다. 윤이는 먹는 걸 멈추더니 날 쳐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윤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안 뀌었는데요~”

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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