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역사와 문화 탐방을 위해 영광을 방문한 교수님들을 맞았습니다. 역사와 사회학 전공의 여교수들입니다. 그중 한 분은 영광 출신인데 제 집안 증조모 뻘 되는 분입니다. 가난한 한 가족을 25 년간이나 추적하면서 ‘세상은 정말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 헤맨 조은 동국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나이 70을 넘겼어도 아직 소녀 ‘티’가 나는 분입니다. 일본에서 낳고 자라 교수로 재직, 정년퇴직을 하고서도 한국 국적을 가진 교수님도 오셨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본 적이 있는 조 교수님과 최근 전화 통화는 몇 번 했지요. 지난 주말의 만남은 그러니까 50여년 만이지요. 고3의 처녀는 당연히 저를 알 수가 없지만 중1이던 저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분입니다. 더욱 조 교수께서는 정당의 공천심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경력도 있으시니 저는 친근감을 갖고 있었지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의 뒷꽁무니를 25년이나 추적한 분 같지 않았습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온 귀부인 보다 더 밝고 젊은 모습이었습니다. 긍정적이고 배려심도 깊어 모시기에 참으로 편안했습니다. 불갑사에서 점심을 때우고 만당 스님에게 차도 얻어 마셨지요. 온버림 정종 선생의 유품도 뒤적이고 조운 선생과 정태병 선생의 생가를 돌아봤습니다. 부자 2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낸 조영규씨 댁과 군남 연안 김씨 종택도 돌아봤습니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교수들에게 여행길은 공부길이도 하나봅니다. 영광 향리학회가 마련한 굴비 강좌에도 참석, 이 것 저 것 묻기도 하더군요. 최윤자 요리 명인은 미리 준비한 듯 식혜를 선물해 영광의 후한 인심을 심어 주셨습니다. 조 교수께서는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온 돌게장을 사고 싶어 했지만 못 사드렸습니다. 구해서 보내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미안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아쉬운 사건(?)이 났습니다. 누가 세운지 알 수 없는 조 교수 증조부의 시비가 부실하기 짝이 없어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또 불갑 저수지를 만들 때 많은 기부를 한 조 교수 조부(조병모)의 비석이 있다면서 안내 했습니다. 참전용사탑만 새롭게 들어서고 그 비석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낯을 들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말이나 말 것을 하는 후회도 했습니다.

관리 기관인 농어촌 공사 측에 물었습니다. 알 수가 없다는 답이었습니다. 아무리 후손들이 살지 않고 있다 해도 이래선 안 되지요. 역사를 말살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더욱 그렇지요. 조병모 선생은 일제의 탄압에도 영광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없던 비도 세워 추모해 마땅합니다. 영광의 문화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저도 실망할 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얼굴을 들 수 있을 때 조 교수님을 다시 초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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