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누워 불을 껏다. 저층인 우리 집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왔다.

‘밤에 빛이 너무 강한데? 암막 커튼을 달아야겠다’

전형적인 어른의 odrkr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빛을 가지고도 놀 생각을 한다. 난 ᅟᅮᆫ간 ‘그림자놀이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개 모양을 만들고 벽을 무대로 즉흥 그림자놀이를 시작했다.

“윤아, 안녕? 난 이 앞에 사는 강아지야. 그런데 이름이 없어. 이름을 지어줄래?”

“오늘 어린이집은 잘 갔니? 거기서 뭐 했어?”

이런 식으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며 집중했다. 신기한 건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 개와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오늘 어땟어? 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재미있어요?” “좋았어요” 짧게 건성으로 대답하던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대화를 끌어나가니 한참 동안 대화가 가능했다. 관심도와 집중력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뱀이나 새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가며 이야기를 진행해나갔다. 급조한 이야기라 내용은 어설프고 조잡했지만 밤의 가로등 빛, 누워서 나누는 대화,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영화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행복하고 낭만적인 오늘 밤의 기억이 아이들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있길.

아이들은 누워서 그림자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내도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며 아이처럼 신나했다. 오케이! 이거 좋았어! 본격적으로 그림자놀이 한번 시작해볼까?

모든 자극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 때가 적기다. 나는 본격적인 그림자 놀이 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하는 윤이와 함께 그림자 놀이의 등장인물을 만들었다. 동화책을 보면 사자, 새우, 게, 고래 등 많은 동물들이 나온다. 형체만 보아도 딱 알 수 있는 동물들을 뽑아 스케치북에 그린 후 오려서 나무젓가락에 붙였다. 그 다음은 무대 만들기. 큰 전지를 안방 화장실 입구에 붙이고 핸드폰 플래시를 뒤에서 쏴주면 무대 완성! 나는 전지 뒤에서 극을 꾸미고 아내와 아이들은 방에서 한 편의 그림자 연극을 감상했다.

그림자놀이를 진행하며 동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고 새삼 동화 작가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평소 동화책을 읽으며 ‘참 책 쉽게 쓴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네’ ‘이게 왜 유명한 거야?’라는 생각들을 했는데 막상 내가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한 편의 동화를 창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평소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은 가치들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담아 한 편의 그림자 연극을 꾸미는 과정 속에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다. 자칫 어른의 잔소리에 그칠 수 잇는 좋은 말, 옳은 말들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즐겁고 재미있게 흡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나도 함께 아이가 되어야 했다. 또 캐릭터를 하나하나 그리고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새우랑 게 같은 그림을 그려본 게 언제였는지. 사각사각 종이를 오려본 건 또 언제였는지. 자르고 붙이는 동안 나는 어느새 무아지경으로 몰입햇다. 아이가 나에게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까지 해주니 우쭐해졋다.

“아빠가 사실 옛날에 유명한 화가였어.”

“진짜요? 우와~”

거짓말까지 보태니 아이들은 나를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TIP.1 <몰입>

“많은 심리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제시하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는 자신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몰두함으로써 목적을 성취하는 삶이다.” - 이기숙, <적기교육>

그림자놀이를 할 때 매번 따로 이야기를 만드는 건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고서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럴 땐 아이들과 대화 형식으로 그림자놀이를 진행하면 좋다. 캐릭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이끌어나가면 아이들은 의와로 자기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는다. 아이의 흥미를 끌고 집중럭을 유지하며 그림자놀이를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럴 땐 동화책을 그림자놀이로 재구성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그림자놀이를 만들어볼까?”(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토끼와 거북이요.”

오리고, 붙이는 과정에서도 아이가 주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이끌어 나갈 때 아이는 더욱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 심리학 분야의 대쵸적 연구자인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일과 여가 활동에서 얻는 최적의 경험˼이라는 논문에서 몰입의 상태에 빠지는 것에 대해 “일이나 놀이 등 모든 활동 분야에서 경험할 수 있지만 대개 자발적이고 인식할 때 생겨난다”고 했다. 또 그는 몰입의 3단계로 목표와 목적의식이 명확해야 할 것, 일이나 과제의 난이도가 적절해야 할 것,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빨라야 할 것을 꼽았다.

이건 마치 그림자놀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림자놀이의 전 과정이 몰입의 3단계(뚜렷한 목표, 적절한 난이도, 결과에 대한 빠른 피드백)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림자놀이를 해보면 백이면 백 아이들은 “제가 해볼게요!”하며 뺏어든다. 아이는 직접 해보면서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처음엔 빛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림자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몰라 그림자에 집중하기보다는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땐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면 본인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는지 감을 잡아간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원리까지 심어줄 수 있고, 불을 끈 상태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들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영광군민신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