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더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일찌감치 대세론이 형성됐지만 중반전에 김이 빠졌던 안철수 후보의 막판 추격, 영남 보수의 결집 분위기 등 몇 가지 변수의 조짐이 있어 상대 진영에서 역전 드라마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변은 발생하지 않았다.

상식선에서 봤을 때 문 후보의 승리는 예견될 수 있는 결과였다. 법정에 세워진 국정농단 세력의 가공할 죄상들, 국가 수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조차 내팽개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등 집권 보수 세력의 악재 속에서 문을 연 조기 대선에서 제1야당의 후보가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적폐청산을 바라는 국민적 기대, 북핵문제와 미·중·일 간의 외교적 긴장관계 등 한반도의 안보위기를 그래도 가장 안정감 있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문재인 정권 탄생의 핵심 동력이 된 셈이다.

호남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이 그래도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선거이긴 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 격으로 선거 트라우마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탓이다. 새누리당의 후보였던 박근혜가 어디 잘나고 유능해서 대통령이 됐는가? 나라의 미래에 대해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내놓지 못했지만 그녀는 대통령이 됐다. 국민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한 박정희의 딸, 홀로 살아가는 사심 없는 미혼 여성, 선거의 여왕…등등 왜곡된 감성에 기댄 몽매한 지지가 그녀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던 국민의 선택을 통해 그녀는 청와대를 자신의 미용시술소, 또는 최순실의 민원해결소로 만들어버린 어처구니없는 빠꿈살이를 했다. 결국 탄핵당하고 수감자 신세가 됐다. 그녀의 이런 무도한 행적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촛불민심을 종북좌파의 준동으로 치부하고 ‘그녀는 죄가 없다’고 외치는 태극기 집회의 슬픈 아우성을 목도하고 있었기에, 선거결과에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대 진영을 종북좌파라 매도하고, 안보위기를 빙자해 북한에 삿대질을 하고 친미만 주장하면 보수가 되는 줄 아는 얼치기 꼴통보수가 다시 집권만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후보의 승리는 다행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안철수 후보가 승리했을지라도 특별한 불만을 가질 이유 또한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나라 안팎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일순간에 풀릴 수는 없다. 북핵문제, 사드 배치, FTA 재협상 위기, 개헌 논쟁 등 셀 수 없는 많은 난관들이 문재인 정권을 둘러싸고 있다. 친박 세력이 여전히 보수의 중심축이 돼있는 상태에서의 여소야대 국면은 난제 해소를 더 어렵게 만들 게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재인 정권이 가장 염려해야 하는 것은 통합을 빙자한 어정쩡한 봉합이다. 이는 대한민국 썩은 보수의 역겨운 냄새를 그대로 안고 가자는 말과 다름이 없다. 문재인 정권이 완수해야 할 청산과제, 개혁과제 수행은 쉽게 구축할 수 없는 높은 누각이다. 집이 무겁고 높을수록 사상누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지를 탄탄하게 다지고 기초를 단단히 해야 한다.

국정농단의 구조적 주범인 적폐청산, 세월호 진상규명 등 그동안의 모든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않고는 개혁 누각의 기초는 튼튼해질 수 없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로부터 문재인 정권이 출범할 수 있었듯이, 문재인 정권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그 촛불을 그윽이 주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호재-언론인,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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