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들어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놀 때 더 몰입하고 즐겁게 뛰 논다. 윤이는 친구를 만난다는 말만 하면 신나서 흥분상태가 된다. 그토록 친구를 좋아하는 윤이에게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윤이가 친구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약간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윤이는 놀이를 주도하기보다는 리더 격의 친구를 따라 노는 것을 더 좋아했고 공원이나 놀이방에서 새로운 친구와 놀고 싶어도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친구 주변만 맴돌았다. 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것은 딱히 문제라기보다 내성적이고 신중한 윤이의 기질과 성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쉽게 극복하고 더 즐겁게 놀 수 있게 하려면 과연 나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총각시절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과 대천 해수욕장에 놀러갔었다. 낮에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어두워질 무렵 숙소에 들어왔다. 남자 다섯 명이 나누는 대화의 결론은 무조건 여자. ‘기승전걸(Girl)'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로 대동단결하고 해변으로 향했다. 가져왔던 술과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나가 모래사장 목 좋은 곳에 돗자리를 폈다. 다들 파이팅을 외치듯 맥주 캔을 ’딱‘따며 여유롭게 분위기 파악에 들어갔으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잦은 헌팅의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잦은 퇴짜의 광경을 목격한 것도 처음이었다. 우리가 낄 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자들이 몇 걸음만 걸어가면 바로 남자들이 붙어서 말을 걸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몇 마디 말도 붙여보기 전에 거의 다 바로 퇴짜를 맞는 광경이었다. 우리보다 어리고 괜찮아 보이는 남자들이 접근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순진했던 우리는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숙소로 다시 들어가서 우리끼리 놀자는 패배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분위기로 방에 가서는 패잔병들의 신세 한탄만 들을 게 뻔했다. 이제 헌팅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칼을 한번 뽑았으면 휘두르기라도 해야지 겁먹고 그냥 다시 칼집에 넣는 건 굴욕이었다. 이미 의욕을 상실한 친구들 앞에서 내가 물어(?) 오겠다며 큰소리 치고 일어났지만 나도 헌팅을 해본 적이 없어 난감하고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시도도 하지 못하고 심장만 벌렁거리며 해변을 배회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에이,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체면이고 뭐고 추억이라도 한번 만들어보지 뭐!’ 용기 내어 여자들 무리에 쭈뼛쭈뼛 다가가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됐어요.” “저희 일행 있어요.” 이건 뭐 영락없는 잡상인 취급이었다. 비웃음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평가 받는 느낌도 들었다. 영업이 이래서 힘든 거구나. 이대로라면 날을 새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도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해보니 별것 아니었다. 점점 오기가 생겼다. 얼굴은 두꺼워졌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고, 멘트(?)도 점점 고급스러워졌다. 나름 노하우가 쌓여갔다. 그러던 중 어미 새를 애타게 찾는 아기 새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민아, 잘 안되지? 그냥 포기하고 우리끼리 놀자. 이제 바닷물 들어와서 자리 빼야겠다.” “야, 쫌만 기다려봐! 이제 감 잡았어! 그냥은 절대 안 간다!” 스무 번이 넘는 도전 끝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숫자도 딱 맞춰 다섯 명의 여성을 인솔하며 당당하게 나타난 나를 존경스럽게 바라보던 친구들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성공한 데에는 나만의 비결이 있었다. ‘관심끌기’와 ‘좋은 에너지 내뿜기’다. 일단 관심을 끌어야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저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네?’ 하는 호김심과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 구체적인 멘트를 쓰면 격이 떨어질 것 같지만 굳이 하나를 공개하자면 퇴짜 후 마무리 멘트다. 유재석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힘내라고, 꼭 성공하라고 파이팅 한번 크게 외쳐주세요!” 퇴짜 맞았다고 그냥 돌아서서는 안 된다. 낙담할 필요도 없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파이팅을 요청하면 대부분 기분 좋게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쳐주고 그 상황이 재밌어 깔깔깔 웃는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 이상한 광경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저기 뭐 재밌는 일 잇나? 저 사람 재밌나본데?’ 이게 내가 노리는 효과였다.

나는 이렇게 재미있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홍보를 하고 다녔다. 내 모습을 지켜본 다른 그룹에게 말을 걸면 어쩐지 호의적이고 호기심에 찬 눈빛을 보였고, 결국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 후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갈 때면 내가 터득한 노하우, 즉 ‘관심 끌기’와 ‘좋은 에너지 내뿜기’로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다. 해변에서 달리기 시합도 하고, 불꽃도 터뜨리며 이목을 집중시켜 우리가 흥이 많은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한다. 그래야 그 다음이 순조롭다. 윤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빠의 리즈시절 헌팅 노하우가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헌팅할 군번은 지났고,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될 것 같다. 매력 어필하기,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애기, 자신감 갖고 일단 시도하기. 이런 노하우를 아이에게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지도자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며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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