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는 중국식당이 있다. 다섯 자씩 새겨진 한자 병풍이 칸막이처럼 세워져 있는 곳이다. ‘三盃通大道’(석 잔을 마시면 큰 도에 통하고) ‘一斗合自然’(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 ‘但得醉中趣’(다만 취한 중에 흥취를 얻으면 그만이지) ‘勿爲醒者傳’(깨어있는 사람에게 전할 생각은 말아라). ‘독작(獨酌; 혼자 술을 마심)’이란 시, 8구절 중 후반부이다.

술에 취해 강물 속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술과 인연이 많은 李太白(701~762)은 모두 1,100여편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중 술에 관한 시는 몇 편이나 될까. 서당에서 배운 ‘고문진보(古文眞寶)’를 펼쳐보니 그 안에만 ‘독작(獨酌)’, ‘월하독작(月下獨酌)’, ‘산중대작(山中對酌)’ 등 3수나 나온다.

‘독작’은 요즘말로 하자면 ‘혼술’이다. 일인 가족이 많은 요즘 유행하는 주법이다. 1천3백 년 전, 중국 최고의 시선(詩仙) 이태백은 왜 혼술을 예찬했을까. 세상에 펴보지 못한 천재의 큰 포부를 어느 누가 알아주겠는가, 한자리에서 300잔을 마신다는 주선(酒仙)과 맞술 마실만한 주량도 찾기 힘들었을 터이다.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도 이태백은 자신, 달, 그리고 그림자까지 3인이 춤을 추며 술을 마셨다.

배갈을 작은 잔에 따라 마시며 “삼배 통대도!”, 건배하듯 소리 내어 읽어본다. 배갈 잔은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잔이다. 40도가 넘는 증류주라 3잔인데도 취기가 돈다. 삼배(三盃)하여 통할 수 있는 대도(大道)는 어떤 길일까.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이란 불가의 문구가 생각난다. 불가에서 대도는 큰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술 고래로 알려졌던 친지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이 70대 후반 큰 수술을 받게 되자 의사선생이 금주명령을 내렸다. 몇 달간 술을 참아내던 친지는 의사선생께 빌어 ‘하루 소주 3잔’이라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 분은 가끔 맥주잔으로 3잔을 했다. “건강에 나쁘다는 술을 왜 못 끊으십니까?” 물어본 적이 있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데---” 그에게 ‘3잔술’은 근심, 걱정을 없애주는 약이었다.

이태백이 3잔술로 통한 ‘큰 길(大道)’은 큰 깨달음이었나? 아니면 근심을 없애는 약이었나? ‘一斗合自然’(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이 답일 것 같다. 취기가 이해를 도와준다. 삼배통대도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합자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합자연’은 도를 닦는 사람도 고된 수련을 통해 이를 수 있는 경지이다. 속인은 술김에 합자연한다고 강물 속 달을 잡으려 뛰어들지 모른다.

난 반주는 좋아하지만 애주가는 아니다. 혼술을 즐기는 편도 아니다. 왜 술을 마시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한 잔 마시고 떠들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취한 동안에는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가끔 ‘합자연’ 근처까지 가본 적도 있다. 숙취 다음날이 문제이다. 다음날 새벽, 속 쓰림에다 전날 술자리에서 쏟아낸 망언들 생각에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잠시 잊었던 걱정도 다시 몰려온다. 술의 힘을 빌려 얻은 흥취는 술 깨면 후회로 변한다.

주선도 독작에서 “다만 취한 중에 흥취를 얻으면 그만이지(但得醉中趣), 깨어있는 사람에게 전할 생각은 말아라(勿爲醒者傳)”고 당부한다. 혼술을 즐기는(?) 이태백 스스로 자신에게 하는 당부인지도 모른다.

역시 ‘독작’은 혼술 때 읽어야할 시구이다. 성인, 현인도 못된 속인이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득도하는 경지를 마음으로 체험하기는 힘들다. 작은 잔에 술을 따라 도 닦는 마음으로 술잔을 든다. 혼술이다. “삼배통대도”,

김종남의 인재육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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