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은 뒤숭숭했습니다. ‘양민의원 사건’으로 불리는 유언비어가 사실인양 퍼져나갔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TV화면에서 전투복 손목을 걷어 올린 전두환을 보았습니다. 섬뜩한 느낌이었지요. 기자실에서 “저놈 사고 치게 생겼다”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아니랄까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이대생들이 조선대에 면도칼과 달걀을 보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나돌았습니다.

이 말이 퍼져나간 경위를 쫓는 정보부에서 선배 기자를 잡아다 욕보였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추위를 탄 선배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80년 봄이었지요. 고교생들까지 연일 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5월 16일 경찰이 처음으로 야간 시위를 허용했습니다. 흥분됐습니다. 민주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허망한 기대도 했습니다. 대단했던 그날 밤 취재를 마치고 잠에 취한 17일 새벽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선대와 전남대에 군대가 진주했다는 것입니다.

부리나케 전남대로 갔습니다. 맞았습니다. 조선대로 갔습니다. 거기에도 군인들의 천막이 쳐지고 출입이 봉쇄됐습니다. 머리가 쭈뼛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남대 앞에서부터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돼 시내 전역으로 번졌습니다. 군인은 쫓고 학생은 쫓겼습니다. 날이 바뀌면서 군인들은 더욱 거칠어지고 학생들과 시민들은 더 많이 거리로 나와 군인들에 대항하는 모습도 늘어갔습니다. 그렇게 잔인한 5월의 학살은 시작됐습니다.

눈이 벌건 병사가 총을 메고 진압봉을 휘두르며 쫓는 것은 학생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모두 ‘사냥감’이었습니다. 도청 앞은 도내 각지에서 차출된 경찰 병력이 막고 있었지요. 기자들은 경찰 병력 안쪽으로 들어갈 때는 지급 받은 완장을 꺼내 차야 했습니다. 다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시가로 나갈 때는 완장을 주머니에 쑤셔 박아야 했습니다. 시위대는 기자들도 곱게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으니 그런 대접을 받아 쌌습니다.

군대가 도청앞 분수대를 빙 둘러 ‘앉아쏴’ 자세로 시민들을 저격한 21일 낮 1시 쯤 근처 식당에서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집단 발포. 그것도 보이는 모든 시민을 향해 저격한 것입니다. 현장을 보기 위해 식당 문을 열자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고나서는 저의 움직임에 반응한 것으로 느꼈습니다.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기척이 있어서야 밖으로 나섰습니다. 분수대에서 보이는 광주여고 골목에서 길을 건너려 뛰는 고등학생이 눈 앞에서 총을 맞고 뒹굴었습니다. 다리에 맞고 기어가는 그 학생을 구하러 뛰어가지 못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37년간 쌓인 응어리가 이번 기념식을 보면서 녹아내렸습니다. 눈물과 함께. 1주일이 다되는 지금까지도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서, 분해서, 실업자로 지낸 세월이 억울해서, 이제야 역사가 바로 잡히고 있다는 감격에서, 문 대통령의 행보가 아름다워서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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