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정 변호사

김씨의 딸 김양은 갓 성년이 된 어느날 인터넷을 이용하여 대부업체 A사에 아버지 김씨의 명의로 대출신청을 한 후 아버지 주민등록초본, 신분증 사본 등을 팩스로 송부하였다. 이후 A사로부터 대출거래계약서 양식을 받아 아버지 김씨의 성명을 기재하고 서명하는 방법으로 대출계약서를 위조해 아버지 김씨 명의 계좌로 500만 원을 입금받았다. 김양은 이와 같은 수법으로 다른 대부업체 두 곳에서 2,000만 원과 1,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김씨는 김양의 대출금을 대신 갚아야 하는 걸까?

형사법 관계에서는, 권한 없이 타인의 명의를 사칭하여 타인이 한 것처럼 허위로 꾸미는 경우에 사문서위조죄가 성립한다. 김양은 아버지 김씨의 승낙이나 위임 없이 김씨가 대출을 신청하는 것처럼 허위로 대출거래예약서를 위조하였으므로 사문서 위조죄가 성립한다.

민사법 관계에서는, 김씨가 대부업체를 상대로 딸이 권한없이 대출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대출금 채무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대부업체는 딸의 대출거래계약 체결 행위를 무권대리에 해당하고, 대부업체 직원이 김씨에게 전화하여 대출금 채무가 있다고 알려줬고 이후에 김씨기 이자를 입금하였기 때문에 무권대리 행위를 추인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무효행위 또는 무권대리 행위의 묵시적 추인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본인 그 행위로 처하게 된 법적 지위를 충분히 이해하고 행위의 결과가 자신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승인한 것으로 볼 만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김씨가 직원으로부터 대출금 채무가 있다는 것을 전화로 통지 받고 대출금 채무의 이자를 지급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 같은 사정만으로 김씨가 김양의 무권대리가 있음을 알고 그 행위의 효과인 대출금 채무를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명시적 도는 묵시적으로 표시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김씨 명의의 대출계약은 김양이 관련 서류를 위조해 A사와 체결한 것으로 그 효력이 김씨에게 미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무권대리란 대리행위자가 그 행위에 관한 대리권이 없는 경우를 말하는데, 대리권 없이 대리행위를 한 것이 때문에 본인에게 법률효과가 귀속되지 않지만, 본인이 무권대리행위를 추인할 경우 상대방이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부부를 포함하여 가족간에는 다른 가족을 위하여 대리행위를 하면서 계약서에 본인, 대리인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인데, 일상적인 가사에 대하여는 일상가사대리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권대리가 아니라 유권대리로 보므로 무권대리로서 본인에게 효력없음을 주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안의 경우에는 대출금액, 대출 경위 등을 고려하여 김씨가 김양의 행위를 무권대리라고 주장한 것이고, 이러한 주장에 대해 대부업체가 무권대리의 추인을 주장하는 소송이었다. 소송의 결과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양승정 변호사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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