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젖힌 이 가슴.

조운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석류’입니다. 문단에서는 ‘구룡폭포’와 더불어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합니다. “우리말이 지니는 묘미도 중시하면서 정감어린 시적 정조(情調, 분위기)를 되살리는 시인으로 조운을 꼽는데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빼어난 시인이었다. 그러나 조운은 그다지 행복한 삶을 누린 것 같지는 않다. 월북한 다음에 이념적 장애로 말미암아 곧 잊히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시조는 곧 세상에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평가마저 유보된 채 문학사의 저편에서 숨어 있어야 하는 기막힌 시련을 당해야 했다. 조운의 시조가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몰인정한 세상이 조운의 시조를 내팽개쳐 버렸다.” 문학평론가 김현선의 ‘조운의 시세계’ 평론입니다.

김준태 시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써 국내 최고 시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김 시인은 최근 영광의 향토시인 장진기의 출판기념회에서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는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면서 조운의 ‘구룡폭포’를 극찬했습니다. 조선대학교 이동순 교수는 조운을 비롯한 영광 출신 시인들을 조명하며 영광을 ‘남도문학 1번지’라고 했습니다. 그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출판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그 맨 앞에는 서슴없이 조운을 자리매김 합니다.

조운 선생은 일제 강점기 영광의 교육‧문화는 물론 민족운동‧독립운동의 지주였습니다. 목포 문학의 맨 앞에 자리하는 여류 소설가 박화성의 문학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49년 월북했습니다. 그리고 잊혔습니다. 월북작가는 사람도 작품도 빛을 보지 못하는 세월을 맞았습니다. 다행히 작품은 1988년 ‘해금’됐습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 충북 옥천군은 기다렸다는 듯 그해에 정지용 문학상을 제정, 벌써 30년째 시상식을 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요. 74년 허물고 새로 지어져 사라진 생가는 96년 복원돼 문학도들의 ‘순례지’가 됐습니다. 옥천은 해마다 ‘지용제’를 열어 전국의 문학 애호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옥천의 정지용’이 아니라 ‘정지용의 옥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지용 마케팅’은 성공했습니다.

영광읍 한전로터리 한편에 조운 선생의 시비가 서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시비는 초봄부터 얼굴이 가려졌습니다. 푸른 천막천에 싸여 동여매진채로. 도로 확장 공사 때문이라는 안내판이 보일 듯 말 듯 세워져 있지요. 도로 공사는 아직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옮겼다 다시 옮기면 훼손 우려가 있어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훼손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혹은 그 가치가 보잘 것 없어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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