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교 영광여자중학교 교장

나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아주 좋아했다.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과목이어서 하루 종일 수학문제만 풀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사각형의 넓이뿐만 아니라 굽은 곡선으로 둘러싸인 면적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다른 과목은 뒷전이고, 매일 수학에 파묻혀 살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2학년 진급 때는 이과반에 편성되었을 것 같은데, 문과반에서 공부를 했고 대학도 이과계열이 아닌, 문과계열을 선택해서 외국어(일본어)를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 왜 문과반에 편성되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졸업을 했고, 그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서울에 가는 방법으로 고속도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도도 있고, 비행기, 열차 그리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법은 시간은 걸리지만 화려한 금수강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공부만을 무기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즐겁게 할 수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 성공의 신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일반고, 조리과학고, 바둑고, 관광고, 미용고 등 개인의 능력과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고등학교가 많이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길이 많은 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은 있겠지만 꼭 필요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진로 선택에 앞서 먼저, 본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나의 소질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실시한 적성검사를 살펴보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고등학교의 특성이나 진로, 학교 분위기 등 이것저것을 따져보아야 한다. 또한, 담임 선생님이나 진로 선생님과 상담도 해보고 필요하면 그 학교에 미리 가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반드시 부모님과 의논을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나의 성장을 보아온 부모님께서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주인공은 자신이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받지만 본인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꿈을 펼칠 수 있다. 왜 내가 문과반에 편성되었는지 지금도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우리 학생들은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작년에 제주외고 3학년에서 2등인 여학생이 학교를 자퇴하고 토목직 9급공무원에 합격해서 9월 26일부터 제주도청 도시건설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제주외고 수재가 9급 공무원을 선택하는 미래가 없는 한국이라는 한탄도 있었지만, 자신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선택한 용기와 과단성이 있는 그녀라면 수재의 영특한 두뇌로 토목분야에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언젠가 위대한 일을 하게 될 날을 꿈꾸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작은 일, 사소한 일, 손 가까이에 있는 일부터 최선을 다하는 학창시절을 보내는 우리 영광의 중·고등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광여자중학교장 김판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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