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또 다른 측면에서 실감나는 청문회 정국이다.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힘차게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가 각료 인선 과정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야 3당이 반대한 강경화 장관 임명으로 정국은 꼬일 대로 꼬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적폐청산, 사드, 경제위기 등 할 일 많은 문 정권에 초장부터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지난 정권에 비하면 봐줄만 하지 않느냐는 변명도 설득력을 잃고 있어 고민은 깊어간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6명의 각료가 청문회에 걸려 낙마한 사례가 있는데다 문 대통령 스스로가 인선의 5대 원칙을 제시하며 큰소리를 쳤던 터라 대응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지난 정권들에서 지금까지, 인사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한국의 엘리트 집단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부동산 투기 의혹, 다운 계약서 등 문제들이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청문회를 통해 발가벗겨 졌다. 또한 이런 문제들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기본적인 도덕률에 관련된 것이기에 진영의 논리가 비상구가 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구조적인 병폐이긴 하다. 부동산 시장을 경기 활성화의 동력으로 삼아왔던 지난 시기의 성장주의 경제정책 하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국민은 흔치 않다. 명문대 진학이 출세의 공식이 된 사회구조 속에서 위장전입을 통해서라도 좋은 학군을 택하려는 학부모들의 욕망 또한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장관이 돼야겠다고 일찌감치 청운의 뜻을 세운 사람이 아닌 바에야 우리사회의 그러한 관행적인 적폐를 비켜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지난 과오에 눈을 감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은 국가 리더라는 특별한 책무와 권력을 지닌 파워 엘리트이기에 남다른 사람들이어야 한다. 털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어디 있겠느냐며 하향 기준치를 제시하는 여론몰이로 비켜갈 사안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문재인 정권의 핵심 슬로건이 적폐청산이기에 어물쩍 넘어갈 일도 아니다.

한국의 파워 엘리트들의 어두운 민낯은 청문회에서만 드러난 게 아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라 했다가 최근 외인사로 바꾼 서울대 병원의 행각은 부끄럽다 못해 참혹함을 느끼게 할 정도다. 정권이 바뀌니 사망의 원인도 바뀌다니…‘영혼 없는 공무원’ 이란 조어에 ‘영혼 없는 의사’라는 신조어가 덧붙여졌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는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리더십이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보여 준 극명한 사례다. 그들은 한결같이 외압에 의해 정의를 버렸고, 사회공동체를 유지해가는 기본 율인 양심이라는 근본 가치에 대한 의식도 전무했다. 촛불 시위는 결국 박 정권의 이 같은 천박한 리더십에 분노하였고 그 연장선에서 문재인 정권을 출범시켰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사에서 오래도록 회자되고 기억될 고귀한 자산이다.

경영학의 핵심 키워드가 인사와 조직이듯이, 혁신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올바른 리더십을 세우는 일이 혁신의 첫 단계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촛불 광장이 정권 교체에만 머물었던 게 아닌 ‘가치 혁명’이었음을 돌이키면서, 촛불 시민이 바랐던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이었는지 곰곰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