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세상은 세월과 함께 변합니다.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은 가끔은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심지어 못 먹고 못 살던 그 시절이 더 좋았다는 말들도 자주 합니다. 밥을 못 먹어 배가 고팠다는 말을 들은 아들 녀석이 라면 끓여 먹지 그랬느냐고 했다는 우스개가 나오는 세월을 살면서 말입니다. 저도 가끔 옛날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듭니다. 그 시간 우리는 근심 걱정은 잊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옛 사람, 옛 먹을거리 얘기가 즐거운 것은 공감하는 지인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서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돈과 명예에 목을 맵니다. 내 것 만들기, 내 자식 챙기느라 남은 안중에도 없는 세상입니다. 콩 한 조각도 나눠 먹을 줄 알았습니다. 이웃의 제삿날을 기억하고 보잘 것 없는 제수라도 나눴습니다. 어지간한 분쟁은 경찰서와 법원 대신 터줏대감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찌 그리운 그 시절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영광 장터가 옮겨갔습니다. 장터라야 공터에 전 벌려놓은 정도지요. 옛 모습은 없었습니다. 장 보러 가는 인파도 옛날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어렸을 적 장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고창과 함평에서 까지 장보러 오는 사람들로 영광읍에는 하루 종일 인파가 넘실거렸지요. 도동리 장터에서 남쪽으로는 학실 재, 북쪽으로는 북문 재 까지 어깨를 부딪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광주 충장로나 서울 명동처럼 말입니다.

귀향한지 오래지 않아 모르겠으나 도동리 장터는 80년 이쪽저쪽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장터와 붙어 있던 우시장은 터미널 뒤편으로 옮겼으나 장터 자체가 사라졌으니 한동안 장이 서지 않은 것 같습니다. 10년 전 우시장이 학정리로 옮겨가고 그 빈터에 장이 서기 시작했답니다. 1일과 5일 장날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번성하던 옛 장터에 비하면 장도 아니었습니다. 옛날 같은 장이 선다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릴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인구가 줄고 유통 구조가 현대화 됐으니 5일장도 이제 세월의 뒤 안으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 것, 내 자식만 귀하게 알고 남은 어찌되든 관심 없는 세상은 다시 찾고 싶습니다. 터줏대감의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젊은이들을 보고 싶습니다. 돈과 벼슬이 아니라 나이와 인격이 대접받는 사회로 되돌아가길 희망 합니다.

요즘 인문학 바람이 제법 강합니다. 인문학이란 용어는 아주 광범위하고 애매하기까지 합니다. 자연과학이 아니라 교양교육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를 생산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보다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지요. 다행입니다. 인문학이 번성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 냄새가 나는 한국이 된다면 인사 청문회에서 흠집 없는 인사들을 만날 수 있겠지요.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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