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신의가 매우 두텁거나,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가리키는 상반된 두가지이야기가 있다. 먼저 신의가 두터운 이야기는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오는데 소진(蘇秦)이 연(燕)왕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왕께서 저를 신임(信任)하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 이간질하려는 사람이 필시 있을 것입니다. 저는 증삼(曾參) 같은 효도도 없고, 백이(伯夷) 같은 청렴(淸廉)한 인물도 아니고, 미생 같은 신의(信義)도 없습니다. 그러니 왕께서 증삼 같은 효자와 백이 같은 청렴과 미생 같은 신의를 가진 사람을 얻어 왕을 섬기도록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 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효도가 증삼 같으면 자기 부모 곁을 떠나서 하룻밤도 자지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어떻게 그에게 천리 밖으로 와서 위기에 빠진 약소한 연나라를 섬기도록 할 수 있습니까? 백이처럼 청렴한자는 의리를 지켜 고죽국(孤竹國)의 후사(後嗣)가 되지 않았고, 무왕(武王)의 신하가 되는 것도 사양(辭讓)하여 봉토를 받지 않아 수양산아래서 굶어 죽었는데 어찌 그런 사람을 천리 길 제나라로 달려가게 할 수 있습니까? 또한 미생처럼 신의 있는 자는 다리 밑에서 여인과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그 여인이 오지 않자 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은 채 다리 기둥을 껴안고 죽었습니다. 이같이 신의 있는 자를 왕께서는 또 어떻게 천리 밖까지 보내 제나라의 강한 병사를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효자도 아니고 청렴하지도 않으며 신의가 없다고 헐뜯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서 저는 부모를 버리고 먼 곳까지 와서 약한 연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달래어 빼앗긴 땅을 다시 바치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 종횡(縱橫)가의 장의(張儀)와 양대 축으로 꼽히던 소진(蘇秦)은 미생을 신의 있는 본보기로 들고 있다. 다음은 ≪장자(莊子)≫ <도척(盜跖)편>에 나오는 융통성이 없고 우직(愚直)하여 목숨을 가볍게 여긴 미생을 말한다. “세상에는 이른바 현사(賢師)라고 부르는 선비 중에 백이와 숙제(叔齊)가 있는데 고죽나라의 임금을 사퇴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시체들은 아무도 장사(葬事)지내 주지 않았다.

포초(鮑焦:주나라 때의 청렴한 은사.) 라는 사람은 자기 행동을 꾸미며 미친척하고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고 죽었다. 신도적(申徒狄:주나라의 현인)은 임금에게 간(諫)하다가 들어주지 않자 돌을 등에 지고 황하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밥이 되었다. 개자추(介子推)는 지극한 충신으로서 며칠 굶은 문공에게 넓적다리 살을 떼어 먹여 살리기까지 하였으나 문공이 그를 배반 하였으므로 그 나라를 떠나 살다 산 속에서 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죽어야만 했다. 미생이란 사람은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다리 기둥을 끌어안은 채 죽어야만 했다. 이 네 사람은 잡아먹기 위해 매달아 놓은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나, 표주박을 들고 구걸하는 거지와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자기 명분에 얽매여 죽음을 가벼이 하고, 근본으로 돌아가 수명을 보전할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직한 사람을 말한다.

하여튼 두이야기 모두 미생이란 사람은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그것만을 믿고 물이 불어 올라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다 죽었다는 것은 같다. 이 얼마나 변통을 모르는 바보짓인가.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을지라도 물이 불어 올라오면 위에서 만나면 어떤가. 요즘이야 이런 일은 없겠지만 사람을 상대 하는 데는 적당한 융통성이 피아간에 좋지 않을까.

오늘의 故事成語 이경일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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