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독일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언론의 호평을 받고 있다. 미·러·중 정상과의 개별 회담에서는 북핵을 압박하는 긴밀한 공조의 틀을 마련했고, 아베 총리와의 단독회담에서는 그동안 중단됐던 한일 정상 셔틀외교를 복원했다. 폭주 기관차같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 외교에서도 비교적 무난한 성과를 남겼고, 이어 선진국 정상들과의 다자외교 데뷔전 또한 성공적으로 치른 셈이다.

물론 모든 현안들이 개운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다. 시진핑은 여전히 사드문제에 강고한 태도를 포기하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아베와 평행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진함을 흠잡을 상황은 아니다. 어차피 명쾌하게 해소될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드와 위안부 문제라는 인화성 높은 민감한 폭탄을 해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시간을 두고 고민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탄핵정국의 결과로 다급하게 정권을 이양 받았기에 준비할 시간도 녹록치 않은 상태에서 이만한 결과를 만들어 낸 문 대통령의 외치 능력은 일단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만 하다. 사실 문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을 회의하는 시선도 많았다. 문 대통령 자신이 걸어 온 길이 솔직히 외교적 역량을 충분히 증거할만한 족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다행스런 일이다.

문 정권의 외치가 이처럼 청신호를 보여준 것에 비하면 내치는 정반대로 꼬여가고만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추미애 당 대표가 연일 야당과의 공조를 깨는 폭탄을 터뜨리고 있는 까닭이다. 제보 조작으로 위기에 내몰린 국민의당을 향한 추 대표의 독설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 많은 게 사실이다. 검찰이 이미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 중이고 이 와중에 국민의당 지지율은 4%대로 추락한 참담한 상황이다. 이같은 국면에서 힘있는 여당의 대표가 불붙은 야당의 위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가혹하기조차 하다.

국정운영의 측면에서도 상식 밖이다. 청문회 정국은 여전히 늪에 빠져있고 추경 통과도 막막한 상황이다. 그나마 공조를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야당인 국민의당을 대표가 직접 나서서 궁지로 몰아넣고 있으니 정치공학적인 산술에서도 낙제 수준이다. 당장 국민의당은 국회 보이콧을 결의했고, 박지원 전 대표도 추대표의 혀에 추경이 날아갈 판이라며 성토했다. 당 대표의 이러한 괴이한 행보에 대해 우원식 원내대표 조차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뭘 얻기 위해 그런 말을 토해내고 있는지, 초등학생의 머리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보니 정권 내부 권력투쟁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권 입장에서 전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여야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추 대표의 언급은 야당이 타깃이 아니라 사실은 청와대를 향한 총질이라는 분석이다. 정권 출범 과정이나 권력 운영에서 당 대표의 지분이 소외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감을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를 청와대에 보내고 있다는 것.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추미애 대표는 당 대표의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청년고용 문제 등 민생안정 정책추진 내용이 핵심인 추경통과가 난항에 처할지라도 자신의 권력 지분 지키기가 우선이라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야당도 아닌, 국정운영에 1차적 책임을 지닌 여당 대표가 할 짓은 결코 아니다.

외치의 성과를 국민과 야당에 보고하고 협치를 이끌어내려 했을 게 분명한 문 대통령의 전략에 여당 대표가 오히려 찬물을 끼얹은 꼴이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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