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작.

투박한 나의 얼굴/두툴한 나의 입술/알알이 붉은 뜻을/내가 어이 이르리까/보소라 임아 보소라/빠개젖힌 이 가슴. 조운 작.

지난주 장진기 시인과 함께 시인의 고향 충북 옥천에 다녀왔습니다. 영광의 조운 시인(이하 경칭생략)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정지용을 찾게 했습니다. 조운과 정지용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뛰어난 문인이며 북한에서 생을 마감한 것 까지.

조운 보다 두 살 아래인 정 지용은 월북 작가 작품이 해금된 88년부터 활발한 추모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선생이 태어난 5월 서울에서 지용문학상이 제정돼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그해 9월 고향인 옥천군에서 다시 문학상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고향 옥천군이 서울의 문인들에게서 선생을 모셔온 것이지요. 올해 벌써 30회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옥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옥천이 정지용의 고향이요 향수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향수’등 선생의 시가 그림과 함께, 혹은 사진과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지용문학관을 먼저 찾았습니다. 도로명이 정 시인의 시 ‘향수’를 딴 ‘향수길’인 것부터 부러웠습니다. 천년로니 백학로니 하는 멋도 역사성도 없는 영광의 길 이름과는 수준이 다른, 문화적인 고장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왔다는 30대 후반의 여성 방문객 7명이 검정 두루마기 차림으로 앉아있는 선생과 함께 사진 찍는 모습을 본 따 우리도 한 컷 했지요. 문학관과 붙어있는 생가는 군에서 매입해 신축 복원 했답니다. 시내를 관통하는 냇가 건너편 주택가 담에도 향수와 얼룩백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군청과 군민회관 격인 ‘관성회관’에도 정지용은 시비로, 시로 살아있었습니다.

우리 영광도 조운 선생의 그 아름다운 시조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나라 안 문인들이 입이 마르도록 감탄해마지않는 ‘석류’를 새긴 시비(詩碑) 하나 세우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가까스로 선생과 아무 사연도 없는 한전 로터리에 세워지긴 했습니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 고향에서 시작에 몰두하는 장진기 군이 경매에 붙여진 선생의 생가를 매입해 아직까지 보존하고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국내 문학인들은 조운 선생의 작품과 생애를 되살리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생가 복원과 문학관 건립을 권합니다. 영광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지역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선생이 지도한 박화성은 최고의 여류소설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목포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조운은 일제하에서 독립운동가로, 민족운동가로, 교육자로 활동한 빼어난 시조시인입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도 않았습니다. 사회주의자란 의심을 받아 월북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입니다. 정지용과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옥천이나 영광이나 한 나라, 한 민족입니다. 영광은 영원히 화해와 용서가 없는 지역으로 남아있어야 하는지 묻습니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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