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이세상의 일들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남의 협조를 구하거나 힘을 빌려 일을 성취 한다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 말기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9년(BC 292), 진(秦)나라의 침공을 받아 수도 한단(邯鄲)이 위태로웠다. 혜문왕은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에게 초(楚)나라의 지원을 얻어 진을 물리칠 방도를 모색(摸索)하였다.

평원군은 자기 식객(食客) 중에 문무를 겸비하고 용기 있는 자를 선발하였는데 19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스스로 20명에 끼이기를 자청하여(毛遂自薦) 동행하기로 했다. 초에 도착한 평원군은 강대국 진을 막기 위해서는 연합전선을 펴야한다고 장시간을 역설(力說)하였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일행 모두가 모수에게 회담장소로 들어가 보도록 권(勸)했다.

모수는 검(劍)을 끼고 들어가 평원군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연합전선은 해(害)냐, 이(利)냐 두 마디면 결정될 일입니다. 오늘 아침부터 한낮이 되도록 결말이 나지 않음은 무엇 때문입니까?” 초왕은 중간에 끼어든 모수를 보고 불쾌히 여기고 평원군에게 물었다. 평원군이 따라온 비서라고 하자 초왕은 얼굴을 붉히며 호통을 쳤다. “썩 물러가라! 네 상전(上典)과 말하고 있는데 어찌 네가 끼어든단 말이냐!”

모수는 검을 앞에 하고 말했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은 70리 영토로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100리의 땅으로 제후(諸侯)를 복종시켰습니다. 이 어찌 병사가 많아 그런 것입니까? 기회를 잘 포착(捕捉)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초의 영토는 5000리나 되고 병사는 100만 명입니다. 이는 패왕(覇王)이 될 수 있는 바탕입니다. 초나라 국력에 누가 감히 대적(對敵) 하겠습니까? 진(秦)의장수 백기(白起)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나 수 만(萬)의 병사로 초와 싸워 세 번 모두 승리 하였습니다. 이는 초의 한(恨)이요, 수치(羞恥)입니다. 그럼에도 대왕은 진을 미워할 줄 모르십니다. 연합전선을 펴자는 것은 초를 위한 것이지 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논리 정연한 모수의 말에 초왕은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초왕이 말했다. “선생의 말과 같다면 우리는 총력을 기울여 선생의 말과 같이 하겠소.” 모수가 연합전선을 펴겠다는 말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모수는 왕의 측근에게 희생(犧牲: 제물로 바쳐지는 산 짐승)의 피를 올리라 하고 초왕에 삽혈(歃血), 즉 서약의 증표로 입에 피를 바르게 했다. 다음은 평원군이, 그다음은 모수가 삽혈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조와 초의 연합전선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 피를 일행 19명에게 주어 돌려가며 삽혈하라고 일갈했다. “그대들은 녹록한 사람들이다.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루는 사람(因人成事)들이다.” 평원군은 모수의 힘을 빌려 연합전선을 성공리에 마치고 조로 돌아왔다. 약속대로 초는 춘신군에게 군사를 주어 조를 지원토록 했고 위(魏)의 신릉군(信陵君)도 군사를 이끌고 조를 지원 했으므로, 진은 할 수없이 싸움을 포기(抛棄)하고 군사를 철수 하였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평원군(平原君)우경열전(虞卿列傳)>에 나오는데 모수가 다른 식객들에게 다른 사람에 붙어서 일을 성사 시켰다고 한 말에서 인인성사가 유래했다. 고사로 많이 인용 되는 말은 아닌데 일반적으로 약삭빠른 사람이 우직(愚直)한 사람보다 출세할 확률(確率)이 더 높다. 우직한 사람들은 보통 자기 힘으로 일을 해내려하니 어렵고 약삭빠른 사람은 인인성사 즉 주위의 사람을 잘 이용해서일까? 그러나 어떤 것이 좋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함께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경일 회사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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