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임명직에 대한 인사가 인사권자 고유의 권한이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헌법상 황제적 권력을 가졌다는 한국 대통령의 국무위원 인사도 대통령 마음대로 못한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청문회 법은 2000년부터 2014년 까지 개정을 거듭했다. 청문 대상 범위가 점차 커졌다. 그간 낙마한 인사들은 수없이 많다. 영달의 기회로 알고 나섰다가 치부만 드러낸 경우다. 누구인가는 기억할 필요도 없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윤창중과 문창극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은 인사 청문회의 동의 없는 임명도 가능하다. 후폭풍을 각오한 인사다.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인사는 아니다. 후보시절 5대 비리 혐의자는 인사에서 배제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러울 정도다. 병역비리는 없다. 위장전입‧부동산투기‧세금탈루‧논문표절 등 혐의가 없는 후보자가 없다. 개혁과 참신을 내세운 정권으로서 체면이 많이 구겨졌다.

그래도 지지도는 80%대를 유지한다. 신통하다. 국민들이 5대 비리 정도는 비리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다. 청문회에서 드러나는 사안 정도는 누구나 하고, 할 수 있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럴 만 하다. 시민운동을 하는 개혁적 인사로 알려진 인물들도 거의 서너 개의 항목에 걸린다. 그 정도 걸리지 않으면서 청문회 대상에 까지 오를 수는 없는 사회라고 보는 것 같다.

그 정도 비리 없이 어떻게 서울에서, 자기 소유 주택에서, 처자식 먹여 살리며 교육시킬 수 있겠느냐는 의식이 퍼져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니까 비리가 작은 편이라고 생각해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정도 비리 없이는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사회, 나라라는 인식의 보편화다. 촌놈의 눈으로 봐도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울에서 밥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안타까운 것은 어떻게 이다지도 성한 사람이 없는가다. 내가 아는 문 대통령은 참으로 깨끗하다. 비리를 행할 시간도 없었다. 깨끗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낙점했을 것이다. 까놓고 보니 성한 사람이 없다. 전 정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도가 현 정권보다 심했을 뿐이다. 문제는 지켜보는 국민들의 의식이다. 문재인 정권마저 이렇다면 이 나라는 비정상 공화국이 돼버렸다는 인식이다. 누구나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려면 알면서도 비리를 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높은 직급, 일류 대학 교수, 판‧검사‧변호사라도 정상적 수입만으로는 서울에서 제집 갖고 살 수는 없다. 아파트 한 채만도 억을 넘어 십억 원 대다. 자녀 공부에는 또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표절, 세금탈루에 음주운전까지 해가면서 악착스레 살지 않으면 장래가 없는 집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다. 청문회에 나선 인사들 모두는 머리 숙여 사죄한다. 제발 그냥 용서해달란다.

문 정권을 이해한다. 성공을 빈다. 그래서 국민들은 문 대통령을 믿고 지지한다. 그 사람들에게 국정을 맡겨도 좋다고 묵인한다. 오히려 비리라고 떠드는 야당 모습을 보며 기분 나빠한다. 남의 비리를 떠들 자격이 없다고 욕한다. 기분은 찝찝하다. 이 나라에 이렇게 ‘착한’인재가 없는가 한탄한다. 깨끗한 문 대통령의 눈에 깨끗하게 보인 사람들일 터다. 문 대통령의 실망은 더 클 것이다.

이제 그 사람들의 국정 수행 능력을 기대할 뿐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아주면 좋겠다. 과거의 비리는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권답기만 바란다. 나라가 어렵다. 이제 가정보다 나라를 가족보다 국민을 보고 갈 것을 요구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려는 문 대통령이 안쓰럽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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