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영 영광군정신건강증진센터장

연일 다양한 갑(甲)질이 뉴스에 등장합니다. 육군대장은 공관병이 ‘자식 같아서’ 잡일을 시키고, 대기업 사장은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며 폭언을 일삼았다고 하지요.

갑(甲)질을 정신사회적으로 분석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지주가 땅을 빌려주면 소작료만 받아가지 않고, 소작농에게 집안의 허드렛일도 맡겼습니다. “내 덕에 네 가족이 먹고 사는데, 이 정도 일도 못해줘?” 오로지 농사짓는 일로만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에는 이런 갑(甲)질쯤 서로가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사람도 사고 팔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서구도 마찬가지였으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큰 변화를 겪습니다. ‘임금이란 노동력의 댓가이지, 사람값이 아니다.’, ‘지위고하를 떠나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근대화의 시기에 독재를 겪었습니다. 상명하복의 군사 문화가 자리를 잡으며, 한복이 군복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갑(甲)의 갑(甲)질이 용인된 것입니다.

물론, 모든 갑이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갑질할 기회가 없었을 뿐, 언제라도 갑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을(乙)도 있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갑질의 횡포 속에 비명을 지르다가, 퇴근길 동네 편의점에서 자신보다 어린 직원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갑질을 합니다.

왜 어떤 갑은 갑질을 하고 어떤 갑은 갑질을 하지 않을까요? 장차 갑질을 할만한 을은 또 어떤 사람일까요?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갑질 잘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착취적인 대인관계,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과 태도, 특별히 호의적인 대우를 기대함.’ 바로 자기애성 성격입니다.

자기애, ‘나르시시즘’이란 본래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넋이 나가 식음을 전폐하다 죽은 요정의 이름이 나르키소스였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는 열망으로 꽉 차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남이 가진 것을 욕심내고, 갖지 못한 열등감에 괴로워합니다. 부글거리는 질투심과 열등감을 다루기 위해 남들을 깎아내리고, 끊임없는 칭찬과 갈채를 바랍니다. 남을 통제하며 느끼는 짜릿한 희열이라야 열등감을 누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과장하여 대우받으려는 이런 사람이 갑의 자리를 얻으면 갑질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입니다.

이들은 크고 작은 갑을(甲乙)관계를 악용하여 열등감을 풉니다. 환불에 늑장을 부렸다며 직원의 무릎을 꿇게 하거나, 경비원에게 수시로 모욕을 주며, 콜센터 직원을 상대로 폭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이 훗날 돈과 권력을 갖게 된다고 해도 그 열등감은 쉬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걸맞는 품위와 겸손을 보여 주기보다, 더한 갑(甲)질을 할 것입니다. 서슬퍼런 갑(甲)질을 지켜보면서 권력에 대한 감탄이나 부에 대한 부러움이 아닌, 꼴사납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열등감과 분별없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 모두가 떠안고 사는 제각각의 열등감. 그것은 조금만 방심하면 스물스물 퍼지는 장마철 곰팡이와 같습니다. 건강한 해법으로 스스로의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일상의 갑(甲)질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열등감을 거만과 오만으로 포장하면 열등감은 더욱더 깊어진다.’는 말콤 포브스(‘포브스’ 발행인)의 발언은 정신의학적으로 대단히 맞는 말입니다.

남주영 영광군정신건강증진센터장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