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50년 전 일이다. 조선일보는 1968년 12월 11일자 사회면 톱에 ‘殘匪, 一家 4名 慘殺’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抗拒 입 찢어』란 부제를 달았다. 울진‧삼척에 침투된 무장공비가 그해 12월 9일 이승복 군 일가족 4명을 참살했다는 기사다. 조선일보의 특종(?)이었다. 파장은 컸다. 파장의 진원은 4명을 참살했다는 ‘팩트’가 아니었다. 아홉 살 난 막내 아들 이승복 군이 공비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자 입을 찢었다는 ‘작문’이었다.

반공을 독재와 탄압의 빌미로 삼는 박정희 정권은 이 기사에 기대 이승복을 반공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이 군의 동상이 학교마다 세워졌다. 물론 교과서에도 실렸다. 반공 교육의 중심에 ‘이승복’이 있었다. 98년 언론개혁 시민연대 측이 ‘정부수립 50년, 오보 50선’ 전시회에 이 기사를 선정했다. 조선일보 측은 ‘세기의 특종’을 오보로 만들 수 없었다. 당시 취재 기자가 승복 군의 형(당시 15세)으로부터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을 하자 대검으로 입을 찢었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했다. 법정으로 비화됐다.

대법원은 조선일보의 손을 들어줬다. 현장 취재했다는 조선일보 기자가 승범 군 형인 학범 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김종배 기자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양측 모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황희 정승에게서 배운 현명한 판결(?)이었다. 현장 취재를 했던 경향신문 기자는 현장에 조선일보 기자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박정희 정권의 반공 마케팅을 위한 ‘스토리 텔링’이었다는 혐의(?)가 짙다. 당연히 ‘이승복 마케팅’은 시들해졌다.

이승복 ‘스토리’는 교과서에서 지워진지 오래다. 학교마다 세워졌던 동상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승복이 다니던 학교는 인구 감소로 폐교됐다. 이승복 기념관이 됐다. 이곳에서 지난 7월 1일 자유한국당 조원진 의원이 중심이 돼 시국토론회가 열렸다. ‘이승복 군 기사가 조작이라는 종북좌파들의 공격에서 진실을 밝혀낸 전 조선일보 기자가 참석한다’면서 ‘반공정신으로 종북좌파 몰아내자’고 참석을 독려했다. 철지난 태극기 집회가 박정희 정권의 정권 연장 음모가 도사린 곳에서 열린 것이다.

박정희의 대를 이은 전두환이 회고록을 냈다. 아들의 출판사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을 폭도‧반란‧북한군 개입이라 주장하고 헬기 사격과 계엄군에 대한 발포명령을 부인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의도다. 그래도 꽤 많이 팔리는 모양이다. 법원으로부터 삭제 명령을 받은 부분을 빼고 더 찍어낸단다. 이 땅에는 아직도 박정희가 신앙인 사람들, 전두환의 말을 믿고 싶은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5‧18 진상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37년이 지나도록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상이 밝혀진다니 다행이다. 발포명령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안사 문건이 공개됐다. 전두환 일당의 죄상을 낱낱이 밝힐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제발 광주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진상조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광주’를 과대포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바로 잡자는 바람이다.

나는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에 광주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주길 정식으로 제안했다. 김종인 체재는 나의 제안을 무시했다. 후보 문재인은 이를 공약했다. 대통령 문재인은 실현을 재천명 했다. 이제야 ‘광주’의 역사가 바로 세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광주는 정의‧평등‧평화‧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929년 11월에도 그랬고 1980년 5월에도 그랬다. 광주정신을 전문에 담은 개정 헌법을 마주할 날이 기다려진다. 2018년 6월 13일이었으면 좋겠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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