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용 한국외대 강사

우리 국민은 헬조선에 살고 있다. 헬조선은 2010년 1월에 등장한 인터넷 신조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다. 혹은 ‘한국이 지옥과 비견될 정도로 살기 나쁜 나라’라는 의미도 있다. 주로 헬조선 이라는 표현은 1)청년실업문제 등 정부정책에 대한 불만, 2)경제적 불평등, 3)과다한 노동시간 문제, 4)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 5)일상 생활에서의 불합리함 등에 사용된다고 한다.

상기 5가지 헬조선의 현실은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1990년대 세계화, 1998년 IMF 구제금융 절차를 밟으면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우리나라에 빠르게 정착되고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폭발적 증가하면서 불안정한 노동시장이 확대되었다. 3차 산업혁명에 각광 받았던 기업들이 도산 혹은 침체하고,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상당한 수준의 일자리 감소가 예견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종 선별적 방식의 소득보장제도는 여전히 한계를 보이며, 양극화와 불평등은 1990년대 이후 극심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생애주기별로 볼 때,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률, 사상 최고 수준 청년실업 및 N포 세대 출현,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률은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선배세대들이 말하는 ‘노오력’만 가지고는 버티기 어려운 세상인 것이다.

최근 이러한 극심한 불평등,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의 급격한 증가, 전체적인 일자리 감소 등의 현실 속에서 국민들의 최저한의 생활보장을 위해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은 이 기본소득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보이며 뜨거운 논쟁과 제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은 기본소득에 대해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기본소득이란 국가(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매월 일정액의 현금을 아무조건 없이 지급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최소한의 조건이자 원칙을 꼽자면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기본소득과 유사한 현금수당을 받고 있다. 바로 가정양육수당(영유아 보육료 지원)과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특히 반대측의 입장은 “첫째, 비용이 많이 들어 세금을 더 내야하며, 사회보장을 대체하기에 충분치 않다. 둘째, 기본소득에 대한 의존으로 일할 의욕을 떨어뜨린다. 셋째, 불필요한 사람에게도 돈을 분배한다. 넷째,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육아와 가사에 전념할 가능성이 크다” 등이다. 이러한 반대측 입장은 유럽의 우파들이 기존 사회보장체계를 무너뜨리고 고액의 현금수당(200~300만원)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람으로서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생계비 수준인 50만원 이내에서 기본소득을 책정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기존 현금수당만 일부 대체한 후 나머지 육아․노인돌봄 사회서비스 및 사회보험 등 사회보장체계를 유지 혹은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다면, 물론 추가적인 비용은 들겠지만, 막대한 비용은 아니며, 최소생계비 이하에서 결정되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사회보장체계가 계속 유지되므로, 여성의 사회진출 및 노동시장 유지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당장 일자리가 로봇에 의해 대체되진 않더라도 지속되어 왔던 비정규직․자영업자 등 불안정한 일자리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산업사회 노동기반 사회보장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 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최저 선에서 보조해주는 기본소득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필요할지 모른다. 현재가치 최대 50만원 이내 기본소득 실현을 위해 기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낼 용의가 있다. 앞으로 내 두 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더욱 불확실하고 불안정할 것이다. 그 아이에게 물려줄 유산이 사회보험과 각종 사회서비스 외에도 근로유인을 떨어뜨리지 않을 만큼의 기본소득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자부한다. 이제 우리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고광용 한국외대 강사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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