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노인은 걸어다니는 박물관이다. 시쳇말로 잘났건 못났건 모든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대하소설이다. 개개인의 이야기들을 모으면 그것은 살아있는, 왜곡되지 않은 역사다. 그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음식과 도구들, 철학과 지식, 정치와 경제,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사회상 등등. 없는 것이 없다. 밝은 앞면도 어두운 뒷면도 있다.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경계해야 할 것들도 시시콜콜 다 들어 있다.

강대국들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물관을 갖고 있다. 나라가 아니라 박물관을 자랑한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아는 자기들이 선진국이고 선진 국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약탈한 것 까지도 자기들의 문화적 안목을 자랑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장개석 총통은 모택동에 밀려 대만으로 피난(?)했다. 쫓기는 판에도 엄청난 양의 문화재들을 가져갔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했다. 그 박물관은 오늘날 대만의 자존심이다. 물론 대만 관광객들이 빼지 않고 둘러보는 명소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점령하지 않는 이유도 그 문화재들 때문일 수도 있다.

고령 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출산율 높이기가 국가적, 민족적 과제다. 건강한 노령사회가 되지 못하면 후손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정부의 부담도 커진다. 노인이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은 노인이 개척해야 한다.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고 도움이 되는 노인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걸어다니는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주면 된다. 말로 하면 삶의 지혜를 담은 철학과 역사 강의다. 글로 남기면 재미 있는 ‘스토리 텔링’이다.

우리는 지금 복지국가로 가고 있다. 건강이 노인 복지의 중심에 있다. 마을마다 노인정이 있고 먹거리가 넘쳐난다. 추위와 더위 걱정 않고 편히 쉬고 놀 수 있다. 너무 비생산적이다. 노인회관을 가면 다소 활기가 보인다. 운동도 하고 노인대학에서 공부(?)도 한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생산성이 없다. 노인이라고 소비만하고 생산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된다. 노인의 생산성을 고민하는 복지 정책이 절실하다.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서 시간만 보낸다면 후세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삶은 가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한 삶의 의미를 되살리고, 그 속의 지혜와 교훈을 물려받는 일이지요.”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펴내는 일을 하는 ‘꿈틀’의 박성준 편집장(44)의 말이다.(중앙일보 14일자 23면)

노인들이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갖게 되고 세대 간 소통의 기회가 만들어지며 작가들의 일자리도 창출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공감한다. 문제는 250만 원 정도 드는 돈이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노인 복지 정책에 포함시키는 방법도 있을 터다. 이 시대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가 드라마다. 길게는 일제 강점기에서 광복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관통한다.

주린 배를 안고 추위에 떨던 시간들. 죽음의 공포와 독재의 폭력을 이겨내고 이 악물고 일한 나날들. 아들딸이 잘되라고, 나처럼은 살지 말라고, 공부하라고 안달하면서 살아온 세월로 점철된 인생이다. 개인의 역사이면서 국가와 민족의 역사다. 굴곡진 세월을 이겨냈기에 우리 노인들은 배울 것이 많은 ‘스토리’의 寶庫(보고)다. 아무리 가치 있는 보물도 잘 보존하지 못하면 박물관이 아니라 쓰레기가 된다.

국정농단 사태를 가까스로 추스르니 북한 핵무기가 나라를 흔든다. 세계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다. 온갖 어려움 다 이겨내고 경제대국을 이룬 노인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단언컨대 정치권에 해결책은 없다. 걸어다니는 박물관에서 위기 탈출의 지혜를 찾아할 것 같다. 핵 공포는 잊고 노인들에게 자서전 한 권씩 안겨드리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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