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영 영광군정신건강증진센터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과에도 정석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제대로 된 사과입니다. ‘죄송하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자신의 책임을 분명히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태도까지 갖추어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혀에서 기계적으로 튕겨 나오는 말이나, 위기를 모면하고자 대충 둘러대는 변명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명망 높은 의사가 의료사고를 냅니다. 일곱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냈어야 할 조직을 여덟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낸 것입니다. 최고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병원 측 법무팀은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마시오. 소송에서 불리해질 것입니다.’라고 의사에게 조언합니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찾아가 ‘변명의 여지없이 제 잘못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변호사들의 예상과 달리 이 사건은 평화롭게 마무리됩니다. 환자는 의사의 실수를 용서했고, 피 말리는 법정 소송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매우 낮은 보상금에 흔쾌히 합의했습니다. 의사의 명망에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음은 당연합니다. 이 사건은 이후 의료 사고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미국 내 의료소송이 1/3로 줄어들었고, 억울한 피해자 역시 그만큼 줄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비난과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열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서열의 우위에 있는 사람에게 사과란 권위를 포기하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얻어진 권위는 새털만큼의 위엄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제대로 사과 받지 못한 상대는 비참함과 분노로 가득 차, 그 권위에 도전하려 들 것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사과 받지 못한 탓에 오래도록 힘들어하는 이들을 자주 만납니다. 정신적 고통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들의 삶이 힘들다며 자식에게 분풀이를 했다거나,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형제간에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받았다거나, 숨 막히는 훈육으로 애어른처럼 길러졌다거나 하는 등등,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감당하기 힘들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분노와 비참함을 토로하고는 합니다.

이들은 치료 과정에서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다시 마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야 합니다. 혹은 그 시절에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울분을 터뜨리거나, 겁에 질려있던 자신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긴 치료의 끝에 드디어 부모를 용서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고, 건강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삶이 숱한 실수로 이어왔음을 받아들입니다. 실수는 눈곱만큼 기억날 뿐, 대부분은 잊혀집니다. 수치심이 들 정도로 비난받은 적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상대가 말없이 용서하고 덮어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을 용서하려는 충분한 의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면, 더욱 흔쾌히 용서할 것입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이 다가옵니다. 서먹하고 불편한 관계는 사과하고 용서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있는 탓입니다. 허울 뿐인 권위에 집착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사과하십시오. 비로소 권위가 살고,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남주영 영광군정신건강증진센터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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