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우리나라에서 국기제정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던 것은 1876년(고종 13) 무렵이다. 운양호사건이 터졌을 때 일본 측은 “운양호에는 엄연히 일본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했느냐”며 트집을 잡았지만 당시 조선은 ‘국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수신사 박영효 등 일행이 일본 배를 타고 도일할 때 당장 게양해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조정에서 큰 틀이 잡힌 초안을 토대로 태극4괘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만들었다. 일본에 도착한 수신사 일행은 고베에 도착하여 숙소 지붕 위에 이 기를 게양했는데, 이것이 태극기의 효시다.

국기가 만들어진 과정은 이렇듯 단순해보이지만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된 '태극기'가 상징하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태극기는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의 이상을 담고 있다.

요즘 태극기를 마주하면 느낌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심경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기를 볼 때마다 절로 솟아나던 경애의 감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고백이다. 태극기가 ‘태극기 집회’라는 이름으로 촛불광장에 저항하는 이들의 상징처럼 자리매김 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태극기가 추구하는 뜻 깊은 민족공영과 번영의 가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광적인 집착의 표징으로 전락해버린 꼴이다. 일종의 국기 모독죄라 불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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