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흔히 도둑을 다르게 부르는 말로 쓰인다. 천장에서 소란을 피우는 쥐를 일컫기도 한다. 후한 말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지방 현(縣)의 말단 관리로 일하면서 앉으나 서나 손에서 책을 읽었다. 현령(縣令) 등소(鄧邵)가 가상히 여겨 당시 최고의 교육기관인 태학(太學:국립대학)에 진학을 알선(斡旋)했다. 그 후 중앙관리로 진출하여 사문정장(四門亭長), 공조(功曹)를 거처 태구장(太丘長)을 지내는 동안 청렴(淸廉)하고 매사에 공명정대(公明正大)하여 학자로 관리로 명망(名望)이 높아졌다.

후한(後漢) 말(末) 당시 왕실은 환관(宦官)이 득세하여 국정농단(國政壟團)은 물론 위상이 말이 아니었다. 뜻있는 관리들이 국정을 바로 잡으려했으나 역부족(力不足)이었다. 환관을 비호하는 세력이 오히려 강하여 당고법(黨錮法:후한 말 환제, 영제 때 환관들이 마음대로 명망 있는 선비들을 벼슬 못하게 금고형으로 막아버림)이란 제도를 만들어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의 정계진출을 못하도록 철저히 막고 있었다.

진식이 대장군 두무(竇武)의 보좌관으로 있을 때 중상시(中常侍) 장양(張讓)이 부친의 상(喪)을 당해 영천에서 장례를 치렀다. 장양은 후일 십상시난(十常侍亂)의 주모자요, 환관(宦官)의 우두머리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한손에 쥐고 흔드는 자였다. 장례식장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으나 명망 있는 인사들은 모두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원만하고 예의가 바른 진식만은 홀로 찾아가 조의(弔意)를 표하며 정중하게 조문을 했다.

명사들의 불참이 불쾌했던 장양은 진식에게 만큼은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당고 사건이 재발했을 때, 많은 사류들이 화를 입었고 진식도 연루되었으나 장양의 도움으로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진식의 행실은 난세를 사는 혜안이 있었던 것이다. 근면하고 검소했던 진식은 남의 괴로움이나 불행을 내일처럼 보살펴주었고, 정무는 공정하고 염결(廉潔:청렴하고 결백함)하게 처리했다.

그가 나이가 들어 고을 수령(首領)으로 있던 어느 해 심한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자 도둑들이 기승을 부렸다. 진식의 집에도 도둑이 들었는데, 들보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으나, 진식은 알고도 모르는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바로하고 태연히 아들 손자들을 불러 일장 훈계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천성을 살려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한 사람이라 해서 본래 악한사람은 없다. 자신도 몰래 익혀진 못된 습성이 그 사함의 본바탕을 흐리게 해서 악한 일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바로 저 대들보위에 있는 사람이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방안의 동정을 살피던 도둑은 진식의 훈계하는 말을 듣다가 ‘들보위의 사람’ 이란 말에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며 뛰어 내려와 진식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너무 오래 굶다보니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도둑은 참회(慙悔)의 눈물을 흘렸다. 진식은 인자한 얼굴로 타일렀다. “너의 외모를 보니 악한 사람 같지는 않구나, 허물을 반성하고 뉘우치면 선한 사람으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오늘 너의 이 행동은 가난함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앞으로는 부디 착한 사람이 되어라.” 하며 비단 두필을 손에 들려 보냈다.

이런 일이 있고난 뒤 소문이 퍼져 진식이 맡고 있는 고을에는 도둑이 모두 사라졌다. 만약 진식이 도둑이 미워 엄벌에 처했다면 지금까지 회자(膾炙)되지 않았을 것이고 혹 해코지나 당하지 않았을까. 옛날의 양상군자들은 정말 배가고파 먹고 살려고 절도를 했지만 요즘도둑들은 굶지는 않는데 욕심 때문에 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경일 회사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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