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마지막까지 예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였다.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19%나 높았다. 공론위는 그러나 ‘탈원전’도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손을 들어주면서 공사는 계속하는 절묘한 결정을 했다. 추가 건설을 추진 중인 4개 원전의 계속 여부는 정부에 맡겼다. 사우디와 체코에 수출 길도 숨통이 터졌다. 절묘하다.

이 결과를 접하면서 과거 정권 같았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머릿속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표방한 정책과 ‘코드’가 맞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결과가 문재인 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은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의 발표가 끝나면서 모든 걱정은 사라졌다. 개운했다.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떠올랐다.

양쪽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다. 대통령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로 과정도 공정했음이 입증됐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물론 야당 쪽에서다. 그들의 경험은 ‘짜고 하는 짓’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리라. 통쾌하다. 그들과 내가 지지하고 성원하는 문재인 정권은 생리적으로 다름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중단 쪽으로 결과가 나왔다면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저 사람들 거품 무는 모습을 참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이 원치 않는 방향의 결론이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것으로 믿는다. 결정을 공론화위로 넘길 당시에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과거 힘 가진 자들이 책임회피를 위해 여론을 조작해온 것을 지켜본 때문이다. 결론을 정해놓은 문 정권이 대통령 발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닌가 의심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그 정부는 국민을 속이는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은 분명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것은 ‘영광의 상처’다. 원전의 위험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치명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원전을 선택했다. 국민의 선택은 시대의 정의다. 그 정의를 진정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 문재인 정권이 풀어야 할 과제다. 사고 위험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지난 30여 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원전 안전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 나라의 원전은 탄생부터 시끄러웠다. 주민 반대로 시끄러웠고, 부실 공사로 시끄러웠다. 짝퉁 부품으로 충격을 안겼다. 영광은 지금 원전 때문에 아픔을 겪고 있다.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는 정도의 부실시공과 핵심 부품의 관로 속에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20여 년 전 시공 당시부터 지역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항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 오랜 세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다.

원안위는 늘 원전 편이었다. 지역 주민의 편을 든 역사는 없다. 지역민들이 제기한 문제점은 묵살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는 사실로 밝혀지기를 반복했다. 원전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지역민들보다 원전의 안전에 둔감했다. 한수원과 한 편이 되어 지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데 급급했다. 금방 드러날 사안도 은폐했다. 원전의 안전을 위한 존재이기를 거부했다. 원전 운영을 위해 존재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소명은 적폐청산이다. 적폐는 권력에만 있지 않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치명적일 수 있는 원전의 적폐청산은 한시도 늦춰서는 안 된다. 어떤 분야보다 먼저 청산돼야 한다. 원전의 장점은 ‘무공해’와 ‘경제성’이다. 하지만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 ‘무공해’와 ‘경제성’은 허구다. 현재진행형인 한빛원전의 부실과 은폐에 적극 나서는 정권이어야 한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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